“모든 생물이 그렇듯 사람에게도 인정 욕구가 있다. 사람의 인정 욕구는 생존과 관련한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로 다룰 수 없는 심리적 욕망에 해당한다. 남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어떠한 종류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는 일은 자신이 생존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일이다.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 다시 말해 자신감이나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하고 삶의 목표까지 생기게 만드는 것이다.”(출처: 네이버 위키백과)
사람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없게 될 때 깊은 절망에 빠진다. 애써 노력한 것들이 원하던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이렇듯 인정 욕구는 타인에게 혹은 자신에게 '너는 생존할 가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은 욕구다. 따라서 열심히 살아낸 모든 순간이 쓸모없어졌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때의 나도 그랬다. 도서관 이전 설치 리모델링을 맡아 1년 내내 최선을 다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맡은 일들을 처리했다. 세세한 것 하나까지 나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없었다. 하다못해 새로운 도서관의 현판까지도 직접 디자인할 정도로 가능한 한 모든 힘과 에너지와 능력을 끌어다 썼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칭찬과 인정을 기대했는데 돌아온 것은 수행한 업무에 관한 평가절하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편 가르기와 배제였다. 거기에 개인사를 들먹이며 결혼 준비하고 신혼집을 꾸미느라 도서관 리모델링은 대충 한 것이 아니냐는 폄훼까지 하였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거기다 몸도 말이 아니었다. 학교 측에서 도서관 리모델링의 잔여 예산을 임의로 다른 곳에 써버리는 바람에 겨울철 필수인 난방기기 설치와 환경호르몬 제거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끝내 묵살당했다. 덕분에 1년 반 동안 나는 새집증후군으로 고생하게 되었다. 그동안 잘 관리해 왔던 건강은 일순간에 무너져 엉망진창이 되었다. 결국 마음과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열과 성을 다해 만들어 둔 공간을 살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다.
새로운 학교에서도 그 후유증으로 인해 지독히도 아팠다. 엉망진창이 된 마음과 상한 몸 때문에 사람도 일터도 너무나도 겁이 나서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걸었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기조차 힘들던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찾아오는 아이들이 모두 '샘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세요. 어디 아프세요?'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상태는 최악이었다. 주어진 업무에는 최선을 다했으나 몸이 아프니 자꾸 쳐지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버티며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움츠러든 내게 친근하게 다가와 준 학생이 있었다. 이전 학교에서 3년 내내 도서부였던 송희가 이 학교로 진학했는데 그 아이 덕분에 알게 된 친구다. 둘은 함께 도서관에 들렀고 그때 처음 시원이를 만나게 되었다. 시원이는 평소에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아주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였다. 가끔 송희와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시원이에게 시선이 주목되면 얼굴이 새빨개지며 부끄러워했다.
그날도 하루 종일 오르내리는 열감과 통증에 뿌옇게 보이지 않는 눈까지 더해 심신이 너무 지쳐 겨우 버티던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송희와 시원이가 함께 도서관에 들렀고, 송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알던 예전의 선생님과는 다르게 너무 기운도 없고 힘들어 보이세요”
“아.. 그렇지? 너무 힘들어서 그래. 그냥 다 힘드네. 자신이 없다 자꾸.”
듣고 있던 시원이가 수줍어하며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건넨다.
"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 샘은 진짜 좋으신 분인 거 같아요. 저, 샘 좋아해도 돼요?"
순간 울컥 눈물이 났다. 이렇게 망가지고 엉망이 된 몸과 마음으로 자꾸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던 시간들이었다.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던 나의 존재 가치를 시원이가 찾아준 기분이었다. 애써 눈물을 참고 샘이 아직 너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좋은 사람인 걸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그냥 알아요." 한다. 다시 참을 수 없게 눈물이 났다. 겨우 눈물을 누르고 "고마워. 그렇게 봐줘서."라고 말했다. 시원이가 얼굴을 붉히며 배시시 웃는다.
그동안 일해 왔던 시간도, 자신에 대한 신뢰도 모두 무너져 있었다.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의미 없는 생을 이제는 정말로 끝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디에서도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가던 그때, 시원이가 해준 그 한 마디가 결국 나를 살렸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마음으로 과연 아이들을 만날 자격이 내게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그런 고민이 일순간에 가벼워진 건 시원이 덕분이었다. 지칠 때마다 미소로, 몇 마디 말로, 작은 간식으로 응원을 건네주는 시원이 같은 아이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명백한 사실을 새로운 연재 꼭지를 쓸 때마다 매번 새삼스럽게 다시 배워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