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준비 없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가족이 된다. 조금씩 자라면서 가족과 주변 상황에 따라 많은 것들을 새롭게 경험하고 성장해 간다. 경험은 직접 하든 책이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든 간에 한 사람의 생애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즐겁고 희망차기보다는 어둡고 불안했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섬세하고 예민했던 내게 원치 않았던 학교폭력의 경험은 삶에 대한 희망 대신 끝없는 절망을 불러일으켰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생명을 끝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내가 경험한 세상이라고는 가족과의 시간과 학교에서의 생활이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더욱 마땅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세상은 여기뿐인데, 그 사건 때문에 모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었다.
이런 일들이 내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좁은 우물을 벗어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애초에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가장 좋았겠지만, 너무도 힘들었던 그 시절에는 아예 우물 밖으로 탈출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나를 둘러싼 좁디좁은 세상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내게 주어진 세상 속에서 폭력을 경험한 후에 내가 할 수 있던 것이라고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고, 미워하는 것뿐이었다. 이제 막 자아 정체감이 형성되는 시기에 나를 잘 알고 아껴주는 이들이 아니라, 나를 괴롭히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평가로 내 정체성이 정해져 버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타인의 부정적 자극은 몇 배나 더 큰 자기혐오가 되어 돌아왔다.
어른들이 청소년기 아이들의 고민을 향해 “별일 아니야 다 지나가. 나도 다 겪어봤어.”라고 가볍게 말할 때가 있다. 그들은 이미 그 시기를 지났기에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지만, 그 아이들에게 주어진 현실의 세상은 그 순간이 전부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그 아이들이 가진 세상 전부를 파괴한다.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일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의도적으로 다른 아이를 괴롭히거나 왕따를 당하는 등의 신체적, 정신적인 폭력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해 준 이야기는 한 가지였다. (주 : 하야시 미키의 <미안해 스이카>라는 책에서 참고)
“지금 네가 속해 있는 세상이 이게 전부인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이 고통이 계속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서 너무 힘들 거야. 하지만 이 시간은 앞으로 살아갈 너의 인생에서 아주 잠깐이고 일부분일 뿐이야. 샘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데 살아있으면 언젠가 너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꼭 만나게 돼. 그러니까 힘들면 울고 답답하면 소리 질러도 돼. 하지만 당장 힘들다고 생명을 버리면 안 돼. 생명을 버린 것처럼 살면 안 돼. 절대 목숨을 끊으면 안 돼.”
각자의 우물에서 사는 어린 올챙이들에게 바란다. 우물 속 세상이 너의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라고. 우물 밖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더 넓은 세계가 있다고. 그러니 그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사실 너희는 올챙이가 아니라 누구보다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개구리라고 말이다.
우리도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잘 모른다. 그 시간을 지나온 후에야 그곳이 아주 좁은 우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괴롭고 힘들어할 때 충분히 상황을 이해하고 따뜻한 위로와 도움으로 그 시각을 바꾸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 올챙이들이 좁디좁은 우물을 벗어나 드넓은 들판과 바다로 점프할 수 있도록 주변의 어른들이 힘을 모아 함께 도와주면 좋겠다.
자 얘들아, 얼마 남지 않았어. 우물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갈 그때를 위해, 이제 점프를 준비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