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세상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두려워하던 일을 어릴 때 이미 충분히 겪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두려워하는 대신 싸우는 방법을 택한 것일지도. 두려움으로 멈춰있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섭거나 어렵거나 부당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은 오히려 그녀의 전의를 불태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거친 삶의 파도가 그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녀는 파도에 휩쓸리기보다 파도를 서핑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녀는 침묵하는 대신 하고 싶은 말을 울지 않고 냉정하게 조목조목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살아가는 세상은 차갑고 얼어붙은 것처럼 냉랭했다.
그녀는 지독히도 외로웠지만,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온몸에 가시를 두른 채 살아갔다. 아니면 내가 또 다칠 테니까. 다치고 싶지 않아 그녀는 겁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세상은 그녀를 투사라 불렀고, 때로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당당히 앞에 나서서 온갖 화살을 맞으며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켰다.
온몸에 화살이 꽂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도 그녀는 앞에 나서서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온통 피투성이가 된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느꼈던 어색함. 그녀가 최선을 다해 지키려던 이들은 그 자리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바람에 실려 온 그들의 속삭임은 마지막 남은 신뢰를 와르르 무너뜨렸다.
군중들로 가득했던 들판은 텅 비어 있었다. 그곳엔 그녀뿐이었다. 가끔 시체를 찾아 날아다니는 까마귀들의 불길한 울음소리만 가득한 폐허 위. 몸을 감싸고 있던 갑옷을 벗어던지고 그녀는 숲 속 동굴에 깊이 들어가 숨었다. 왈칵 겁이 났다. 사실 그녀는 누구보다 심각한 겁쟁이였다. 겁이 없는 게 아니라 다만 겁이 없는 척했던 것뿐이었다.
숲을 지나던 한 사람이 그녀를 발견하고 구조해서 자기가 사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심하게 앓았다. 그녀를 구조하고 보호해 준 이 사람은 아무도 몰랐던 그녀의 가시 안에 감추어져 있던 부드러운 속살을 발견해 주었다. 그녀는 비로소 두려움 대신 택했던 가시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겁을 먹어도 안전할 수 있었다.
세상에 맞서 싸우던 겁이 없어 보였던 그녀는 이제는 두려움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녀가 겁을 내든 겁 없이 행동하든 항상 든든하게 뒤를 받쳐 줄 소중한 이가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다시 겁이 없는 삶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서만큼은 언제나 자유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