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 대학교 3학년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해는 금전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다. 평소에는 부모님이 자취방 비용을 지원해 주셨지만, 그때는 지원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지원 중단의 이유는 아빠가 22년 이상 근무하신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하게 되셨기 때문이었다.
말이 명예퇴직이지 사실상 권고사직이었다. IMF로 온 나라가 흔들리던 시기였다 보니 아빠 역시 무사하지 못했던 거다. 엄마는 이번 학기는 아르바이트를 하던지 어떻게 해서든 버텨보라는 연락을 하셨다. 솔직히 너무 막막했다. 내게 아르바이트 경험이라곤 중학교 3학년 때 3개월간 새벽마다 돌리던 신문배달 외에는 전무후무했다. 심지어 그 신문배달도 내가 못 일어나는 날은 아빠가 대신해 주고는 했었다.
문제는 교재값과 과제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교통비 그 외에도 최소한의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서 대책을 세워보기로 했다. 아무리 졸라매도 월세와 공납금을 비롯하여 한 달에 최소한으로 나가야 할 돈이 필요했다. 이대로는 힘들었다. 두려움은 넣어두고 나는 마지막 용기를 짜내어 아르바이트를 구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구한 아르바이트는 당시 막 생겨났던 PC방 아르바이트였다. 지금의 깨끗한 PC방과는 달라서 당시에는 흡연 공간과 금연 공간이 따로 나누어져 있지도 않았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난 뒷정리를 하는 것이었다. 좌석에는 담배꽁초와 담뱃재, 심지어 침으로 가득한 재떨이가 남겨져 있었고, 각종 과자 부스러기를 비롯하여 먹다 남긴 라면 국물까지 가득했다.
다음 사람이 깨끗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자리마다 뒷정리를 하는 한편, 틈틈이 PC방의 카운터도 봐야 했다. 또 PC방에 연결되어 있는 남녀 공용 화장실을 물로 청소하는 일도 해야 했다. 낯설고 역한 냄새에 정신이 혼미했지만, 코와 입을 팔로 가리고 묵묵히 맡은 일을 해냈다. 그렇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던 중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사용하고 나간 자리의 뒷정리를 한참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오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을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PC방을 관리하는 매니저에 의해 채용되었었기 때문이다.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사장님과도 안면을 터야 했기에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했는데, 사장님 표정이 몹시 안 좋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시작했던 PC방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게 되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사장님의 시선으로 보기에 카운터를 맡기기엔 외모가 보기 안 좋다고 했단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어이가 없고 그런 자리는 내가 사양이겠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서러워서 눈물이 났었다. 그렇게 나의 짧은 아르바이트는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학기에 성적에 따른 복지 장학금을 일부 받게 되었고, 복지 장학금으로 학기가 진행되는 몇 달 동안의 월세와 공납금을 어찌어찌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장학금을 쪼개어 한 푼 한 푼 아껴 사용했다. 감사하게도 돈이 모두 떨어질 무렵 뒤늦게 사정을 전해 들은 둘째 큰엄마가 챙겨주신 약간의 용돈으로 학기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세상의 쓴맛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그 짧은 일주일의 아르바이트는 나를 깨트렸다. 돈에 집착하지는 않으려고 했지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일정 금액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과, 남의 돈을 버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해프닝은 정말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때의 일주일 덕분에 조금 더 세상에 도전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