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비물 3중주

너희들의 침, 땀, 눈물

by Pearl K

학교도서관에 가장 많은 건 무엇일까. 물론 책이다. 그런데 책만큼이나 많은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도서관을 방문한 아이들이 흘리는 수많은 침, 땀, 눈물이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 아이들은 무섭게 달리기 시작한다. 급식실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흡입을 마치고는 곧장 도서관으로 온다. 방금 밥을 먹었지만 혈기왕성한 나이라 여전히 배가 고픈지 책 중에서도 요리책을 가장 많이 찾는다. 보통은 레시피를 참고하여 음식을 만들어 보기 위해 요리책을 찾겠지만, 사춘기의 아이들이 요리책을 펴는 이유는 오로지 음식 사진 때문이다.


원래는 앞으로 셰프나 요식업 쪽에 종사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진로를 위해 구비해 둔 것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사진으로나마 맛있는 음식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아이들이 요리책을 더 많이 찾고 있다. 한식부터 시작하여 각 나라의 요리, 채식, 도시락, 베이킹, 디저트까지 다양한 요리책을 보며 연신 입맛을 다시던 아이들은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대출하겠다고 책을 가져온다. 그렇게 요리책을 대출해줄 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 있다.


“대출하려고? 요리책을 빌릴 때는 주의사항이 있어. 맛있어 보인다고 책에 절대 침 흘리면 안 된다~. 그리고 계속 보면 배고프니까 하나씩 아껴서 봐.”


점심시간 끝나기 10분 전의 도서관은 한여름이 가까울수록 엄청나게 붐빈다. 체육 시간도 모자라 점심시간 내내 한참을 밖에서 뛰어다니는 남학생들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장 시원한 장소인 도서관에 들러 잠깐이나마 땀을 식히고 간다.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는 아이들이나 사서 선생님 입장에서는 땀투성이가 되어 도서관에 들르는 아이들이 썩 반갑지만은 않다.


애써 숨을 참아보지만 이미 남학생들의 땀 냄새는 도서관 안으로 가득 퍼져버린다. 특히 땀에 젖은 옷을 말리겠다고 에어컨 밑에서 옷을 펄럭거릴 때면 땀 냄새를 피하려 코를 틀어막기도 한다. 짐짓 이제 수업 종이 친다며 쉰내 나는 남학생들을 우르르 쫓아내고 창문과 문을 열어놓고 한참 환기를 시킨다.


사실 1년 내내 도서관에서 진짜로 땀을 흘리는 학생들은 따로 있다. 바로 도서부 아이들이다.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을 도와서 반납도서 배가 및 각종 홍보물을 제작하기도 하고, 도서관의 행사를 앞장서서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각자 요일마다 정해진 당번들이 와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학교도서관의 여름은 뜨겁고도 시원하다.


학창 시절 내 별명은 울보였다. 화가 날 때나, 억울할 때도, 말보다 눈물이 더 빠르게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럽고 힘든 마음에 눈물이 날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도서관으로 숨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우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책 속에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감출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도서관은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숨어서 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내가 맡은 학교도서관은 언제나 눈물 흘릴 곳이 필요한 이들의 눈물을 받아주는 공간이었다. 처음으로 교사가 되어 근무하던 한 국어 선생님은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도서관에 오셨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선생님은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고, 나는 민망하지 않도록 조용히 틀어놓은 배경음악의 볼륨을 올려드렸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지만 어설픈 위로보다 그저 말없이 충분히 우시도록 내버려 두었다.


또 유난히 도서관에 와서 우는 친구들이 어느 학교에든 있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고, 형이나 동생, 언니 때문에 힘들다고. 수많은 고민 중에 가장 많은 건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다. 도서관에 와서 자주 울었던 아이 중 특히 생각나는 한 친구는 해영이다. 해영이는 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내게 여러 가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해영이는 친구들 간의 관계로 많이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다 같이 노는 그룹인데 알고 보니 자기만 빼고 따로 바깥에서 만나 떡볶이를 먹었다든지, 겉으로는 친한 척하고 뒤에서는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을 들추고 욕을 했다든지 하는 일들을 여러 번 겪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해영이는 내게 와서 속상하다고 하며 펑펑 울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아이를 달래주고 다독여서 교실로 보냈다.


해영이의 입장에서만 듣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하루는 해영이 담임 선생님께 대화를 요청했다. 그 대화를 통해 해영이가 관계에 서투른 편이고, 막상 친구들이 생겨도 혼자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여학생들은 친구를 맺으면 무엇이든 함께 하려고 하는데, 해영이는 혼자 다닌 경험이 많다 보니 친구를 배려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던 거다.


해영이의 그런 점 때문에 친해지려 다가갔다가도 관계가 멀어지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ㅎ9영이의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해영이와 그동안 쌓인 신뢰(라포)를 바탕으로 아이가 고쳐야 할 점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해 주려고 노력했다. 조금 삐지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고 다행히 친구들과의 관계가 조금은 개선되었다. 마침내 해영이의 눈물과 하소연도 잦아들었다.


학교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참 신기한 역할을 한다. 학교 내에 위치하지만, 마치 학교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 그 자체로 많은 학교 내의 구성원들과 학생들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물들이는 그들의 침, 땀, 눈물이 주는 3중주를 지켜보면서 이곳이 아이들에게 혹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나무 숲이 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학생들과 동료 교직원들에게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학교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눈물과 슬픔을 위로받고 자라온 나처럼, 지금 어렵고 힘들어하는 마음들을 넉넉히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울보인 이유는 나를 위해서만 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울어주라는 뜻이니까. 필요한 이들에게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학교도서관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내 삶과 함께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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