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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02. 2022

내 입에선 무엇이 나올까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중에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난감한 일을 겪는 공주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착한 공주가 입을 열면 꽃이 피고 향기가 나고 그녀의 눈물이 보석으로 변했지만, 못된 공주가 입을 열면 그 입에서는 두꺼비와 개구리가 튀어나왔다.


   때로 아니 자주 나는 못된 공주와 함께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함께 사는 못된 공주는 자주 내 자존감을 도둑질했고, 내가 스스로를 미워하고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독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입에서 쏘아진 독을 맞으면 나는 더욱더 스스로를 자책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 나인 것만 같았다. 언제나 나는 못된 공주가 정해둔 기준에는 모든 것이 한참이나 미달되는 인간이었다.

   

   끊임없이 노력해도 그녀는 항상 내게서 새로운 문젯거리를 찾아냈다. 어떻게 해도 나는 불완전했고 영원히 나아질 수 없었다. 기질적으로 본래 타고난 성향도 사람을 좋아하고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누군가 불편함을 표현하면 그 감정들을 처리해 내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여 굳어질 정도로 마음의 힘을 다 쓰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런 내게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저주와도 같았다. 가끔은 내 위치가 훤히 노출된 넓은 들판에서,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영원히 벗어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남들이 보면 별 것 아닌 일도 내게는 언제나 커다란 스트레스였고, 스트레스에 관한 민감도와 취약성도 너무 약해서 풀 곳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매운 음식으로 폭식하고 내 몸에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게 나를 얼마나 혹사시키는 일인지는 막상 잘 몰랐던 것 같다.


   스트레스받은 것을 너무 눌러놓고 혼자 곱씹다가 폭발하면서 세상에 대한 염세주의적 태도가 만들어졌고 뒤이어 그런 태도는 세상을 향한 원망과 분노로 이어졌다. 출렁이면 넘칠 정도로 머리끝까지 분노의 감정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도 끝도 없이 스스로를 자책했고 결국은 나 하나만 세상에서 사라지면 될 거라는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못된 공주에게 자존감을 도둑질당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가면 갈수록 내가 나를 가장 학대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한다. 깊은 구덩이를 벗어나 나를 억누르던 무거운 무게를 던져버린다. 스스로를 아껴줄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아낄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배웠기 때문이다. 세상 모두에게 친절해도 자신에겐 잔인했던 나를 이제 벗어버린다.  

   

   먼저 나의 생각과 마음이 어떠한지 물어주고 잘 들어줄 거다.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하듯 내게도 예쁜 말들을 들려주자. 예고 없는 어택에 한 번씩 당황하더라도 괜찮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향한 다정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겠다. 내가 나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듯,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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