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원래 식성이 그런 건지, 엄마를 닮아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해조류를 좋아하고 잘 먹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미역, 다시마, 톳, 꼬시래기 이런 종류는 없어서 못 먹는다고 할 정도다.
한동안 해조류를 못 먹었는데 최근 건강식단을 하고 있기도 하고 해서 두 달 전 마음먹고 염장된 곰피미역을 1kg 정도 구입했다. 염장이 되어 있어 30분이 넘게 물에 담가 소금기를 씻어낸 후 몇 번이나 다시 찬물에 씻어내서 짠맛이 사라질 즈음 적당한 크기로 잘라 그냥 먹기도 하고 쌈처럼 고기를 싸서 먹기도 했다.
두어 달이 지나는 동안 많아 보이던 곰피미역을 다 먹었기에 새로 주문하려고 신선식품을 주로 사는 어플에 들어갔더니, 마침 염장하지 않은 제철의 생 곰피미역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충분한 양을 사두고 야금야금 먹기 위해서 이번에는 통 크게 2kg을 주문했다.
언제쯤 도착할까 생각했는데 드디어 오늘 택배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스티로폼 상자를 뜯고 뚜껑을 열어보았는데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몹시 커다랗기도 하고 갈색의 나무처럼 생긴 데다가 뻣뻣하기까지 한 무언가가 큰 봉지 안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봐 온 곰피미역과는 몹시 달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괴생물을 마주 하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 정도여서 살짝 징그럽기도 했다. 아주 깊은 바다 깊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태곳적 생명의 거대한 무리가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했다.
하나를 꺼내보려고 했더니 봉지 전체의 내용물이 딸려 올라오는 바람에 다시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잘 드는 가위를 들어 중간중간 잘라보았다. 여전히 거대했다. 잘 찾아보니 안쪽에 괴물의 중심부처럼 생긴 기둥 모양의 막대가 있었고, 그 막대를 중심으로 나뭇가지처럼 곰피미역들이 뻗어 나와 있었다.
앗! 이거다. 나는 가위를 다시 집어 들고 기둥 모양 막대 주위의 곰피미역 줄기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무얼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친정엄마에게 SOS를 요청하기로 했다.
그 순간 이런 마음의 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미련한 짓을 했다고 그걸 다 어떻게 하려고 하냐고 엄청 혼날지도 몰라.' 잠깐 망설이는 동안 다행히도 친한 영양교사 샘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냉큼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샘은 웃으며 깨끗이 씻어 한 번 데쳐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어차피 생으로 먹는 건데 왜 데쳐야 하지 생각하던 지식이 부족했던 나의 의문에 샘은 아예 생으로 먹는 건 비린내가 심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설명을 들으며 곰피미역을 씻어내고 물을 끓여 차례로 미역을 데치기 시작했다.
꽤 낯설었던 뻣뻣한 갈색의 나뭇가지 같은 생 곰피미역들은 끓는 물을 잠시 거치고 나왔을 뿐인데도 금세 초록초록해졌다. 색만 변하는 것이 아니고 비린내도 빠지고 부드러워져서 내가 익히 보아왔던 그 자태로 새롭게 태어나 있었다.
가장 커다란 지퍼백 4개를 가득 채우고도 넘치던 뻣뻣한 곰피미역들은 부들부들해져서 부피도 줄어들었고, 지퍼백 2개로 나눠 담는데도 자리가 여유롭게 남았다. 신난 나는 선생님 말이 맞았다며 샘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다고 하며 진심을 담은 고마움의 인사를 건넸다.
늘 염장한 것만 사다가 생 해조류를 사 보니 확실히 깨달았다. 어릴 때 집에서는 엄마가 준비해 주었으니 손이 얼마나 가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직접 생물을 사서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보려니 이렇게나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또 하나 배웠다.
곰피대첩으로 길이길이 남을 오늘의 사건을 잊지 않고 싶어 냉큼 기록해 본다. 나 이제 생 곰피미역 좀 다룰 줄 아는 여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