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다. 엄격하고 무섭다던 다른 친구들의 아빠와는 다르게 우리 아빠는 언제나 자녀들에게 다정한 분이셨다. 휴일도 거의 없이 3교대 근무로 바쁜 와중에도 어쩌다가 쉬는 날이 생기면, 일찍부터 일어나 삼 남매를 데리고 나들이를 가거나 같이 아침 운동을 나가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주려고 애쓰셨다.
엄마는 요리는 물론이고 정리, 정돈과 청소를 거의 완벽하게 하는 분이시다. 우리 입장에서는 때로 귀찮고 번거로운 점도 물론 없지 않았지만, 머리카락 하나 떨어질 틈도 없이 깨끗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엄마 덕분이다.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걸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주시느라 자기 시간도 없이 많은 부분을 헌신해 주셨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엄마의 노력이 고마움보다는 불평거리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바쁜 아빠 대신 삼 남매를 혼자 돌보시느라 얼마나 애를 많이 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런 엄마의 노력을 빛바래게 만드는 부분이 바로 말의 표현에 있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이라고는 ‘밥통 같은 놈’ 뿐이던 아빠와는 달리 엄마의 말은 정말 센 편이셨다. 게다가 경상도 출신이시다 보니 억양과 사투리에서 느껴지는 포스가 만만치 않았다. 유난히 ‘사람의 말과 감정표현’에 민감해서, 흘려들을 수 있는 말도 의미를 두고 곱씹어 생각하던 내게는 엄마의 강한 말들이 자주 상처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가족끼리 오붓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중, 누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어?" 했더니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저기 다리 밑에서 주워 왔지." 하는 거다. 장난치지 말라고 했는데도 진짜라며 그 말을 철회하지 않고 오히려 옆에서 오빠가 "얘 주워 왔대~" 하고 키득대며 놀리기까지 하면서 내 기분은 확 상했다.
변해버린 내 표정을 보고 엄마는 "농담한 걸 가지고 왜 혼자 정색하냐?"라고 했지만 이미 속상해져 버린 마음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나는 그대로 방에 들어가 엉엉 울어버렸다. 방금까지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짜게 식어버렸다. 금세라도 엄마가 들어와 나를 달래주고 미안하다고 사과해 주길 바랐는데, 밖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쟤는 쓸데없이 너무 심각해." 같은 이야기들 뿐이었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 하나는 경상도 사투리로 많이 사용하는 ‘가시나’였다. 평소에도 나와 여동생에게는 가시나라고 자주 부르던 엄마는 오빠에게는 머스마 대신 아들!이라고 부르는 점이 특히 더 이해가 안 되었다. 듣기 너무 싫다고 ‘가시나’는 욕이니 사용하지 말라고 해도 오히려 더 끝까지 사용하셨다. 특히 엄마는 화가 나면 항상 내게 ‘망할 놈의 가시나’라고 했다. 안 그래도 듣기 싫은 말에 망할 놈이라는 말까지 붙이다니, 나는 괜스레 더 오기가 생겨서 "나는 망할 놈이 아니라 흥할 놈이거든? 내가 진짜로 망했으면 좋겠어?" 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태열로 시작해서 평생 아토피가 심각할 정도로 중증이어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피가 날 정도로 온몸을 긁어대지 않으면 가려움이 멈추지 않아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진물이 계속 흘러 옷과 이불에 달라붙었다. 떼어낼 때마다 살이 찢기는 느낌이었다. 물이 닿을 때는 비명을 채 삼키지 못하고 지르게 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여름에는 헐고 진물이 나고 겨울에는 건조해서 피부가 쩍쩍 갈라져 마치 마른 논바닥 같았다. 가려움을 멈출 수가 없어서 피부를 칼로 다 베어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아이가 그렇게 아프면 엄마의 마음도 고통스러웠겠지만, 통증보다 더 지독한 가려움을 겪고 있는 당사자가 가장 괴로운데 엄마의 말들은 또 다른 생채기를 남겼다. 죽을병이 아니기 때문에 등교는 해야 하고 외출도 필요했다. 필요한 걸 사러 집 앞 슈퍼마켓이라도 다녀오면 엄마는 내게 "그 꼴을 하고 밖에 나가고 싶냐?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겠니" 하셨다. "자꾸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어. 엄마 같으면 그런 꼴로 안 나다니고 싶을 것 같은데.." 내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선을 더 신경 쓰는 것 같은 그 말들에 너무 화가 났다.
어느 날은 엄마에게 '내가 부끄러워? 엄마가 이렇게 낳았잖아." 하고 외쳤다. 엄마는 양보하지 않고 "지금 같은 모습은 부끄러워."라고 대답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피부가 갈라지고 싶어서 갈라진 것도 아닌데 그럼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식단 관리도 하고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지만 한방약을 잘못 써서 손발이 다섯 배 이상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거의 죽을 뻔했는데 차가운 얼음물에 5시간 넘게 담겨 있은 후에야 붓기는 겨우 가라앉았다.
엄마도 속상해서 한 말이겠지만, 그 말들로 인해 스스로를 미워하고 증오했던 시간은 이십 대까지 이어졌다. 그날도 엄마와 계속 전화기로 다투던 중이었다. 서른다섯이 넘도록 결혼할 사람도 없이 나이만 들어간다고 재촉하는 엄마에게 나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제 알았어. 내가 왜 결혼을 안 하는지." 엄마는 "왜?" 하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왜, 나 고등학교 때 그랬잖아. 너처럼 행동하면 결혼해서 남편한테 평생 맞고 살 거라고."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급하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맞고 살기 싫어서 결혼 안 하는 거야. 그러니까 더 재촉하지 마."
언제나 엄마는 내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해 주며 현실을 알려주겠냐고도 하셨다. 내 생각은 사실 좀 다르다. 가혹하고 잔인한 현실도 알려주어야 하지만, 좋은 말로 알려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가족이라면 오히려 서로를 위해 더 격려해 주고, 다정한 말들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장점을 먼저 보려고 노력하는 나로서는 단점부터 지적하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던 순간이 많았다.
고칠 점과 단점만 지적하고 인정하는 말이나 칭찬 한마디 해 주지 않는 엄마의 부정적 언어들을 지속적으로 듣고 자라오면서 나는 원치 않게 부정적인 말들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그 언어들은 내 삶의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내게 최악의 피드백을 들려주고 나를 끌어내리는 목소리가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렇게 일일이 상처받은 이유는 결국 누구보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부정적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는 ‘사실이 아니야’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회복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끌어내리고 낮추고 폄훼하는 목소리들에 흔들렸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물론 단번에 모든 것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내게 새겨진 부정적인 메시지들을 긍정적으로 돌려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누군가 만들어 준 것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새롭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의와 이미지를 세우고 자아정체감을 확립해 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통해 차츰 회복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본래 타고나기를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고 다른 사람을 볼 때 장점과 좋은 부분을 먼저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힘든 시절을 보내던 엄마가 내뿜었던 부정적인 말들과 정서에 기대어 작아지기보다, 이제 다 자랐으니 내가 나를 먼저 인정하고 사랑해 주기로 했다.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잘하고 있다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널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장소가 있고, 너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힘을 내라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이고 예쁜 말들을 잔뜩 들려주며 응원하고 싶다.
"난 늘 궁금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 난 늘 기다렸어. 날 이해해 줄 알아봐 줄 한 사람 / 사실 다 알고 있는데 답은 내 안에 있는데 / 자꾸 되물어 봤어. 나를 믿을 수 없어. / 애써 모른 척했어. 혼자 자신이 없어 계속 외면해 왔어. 나를 /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 살아온 날들과 사랑한 이들이 너무나 소중한 사람 / 지금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중요한 사람 /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카만 얼룩을 남겨 / 나를 지키는 사람 /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 나는 나로써 충분해. 괜찮아 이젠.
-뮤지컬 레드북 No.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