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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02. 2023

자꾸 반대로 하고 싶네

나는 청개구리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듣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더 중요한 청개구리다. 어릴 때부터 남들이 하지 말라는 건 기를 쓰고 더 하고 싶어했다. 얌전한 여자아이를 바라는 부모님께 세상 왈가닥인 딸이었고, 오빠들이 하는 대로 위험한 장난을 따라 하다가 다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청개구리 기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이제 제대로 공부 좀 해볼까’하는 마음을 먹었다가도, 엄마가 방문을 열고 “너 공부 안 해?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말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공부가 되어 버렸다. 등교 시간에 오빠와 여동생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나를 앞서 나갈 때면, 절대 지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그러다가 바닥에 튀어나온 돌을 못 보고 걸려 넘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아직 삼남매가 모두 학생이던 시절엔 온 가족이 모여 1~2주에 한 번씩 가족회의를 했었다. 나는 그 시간이 제일 별로였다. 말은 가족회의지만 사실상 아빠 혼자 2시간 넘게 잔소리하는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우리 의견도 들어주는 줄 알았다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는 가족회의를 하자고 할 때마다 “그게 무슨 가족회의야. 잔소리 타임이지. 가족회의를 할 거면 우리 의견도 들어야지.” 했다. 아마도 부모님은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 철이 들면 내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를 하신 것 같은데 그건 오산이었다.


   이런 성향은 일명 반골 기질이라고도 한다. 반골 기질이란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인 권위나 방식, 관습 등에 맹종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비판과 반항을 일삼는 기질이란다. 내게는 공정과 정의, 옳고 그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자신들이 만든 관습을 따라 “이건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사람을 찍어 누르는 상황들이 매우 별로였다.


   세상에 원래 그런 건 하나도 없는데, 본인들에게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며 다른 관점의 여지를 틀어막는 꽉 막힌 태도들이 정말 답답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정해진 규칙은 전혀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도 자기들 마음대로 바꾸기까지 했다.


   물론 내게도 타협과 조율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바로 그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과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로 전달해 주면 된다. 반대로 언성이 커지거나 막무가내로 ‘네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너만 손해지.’라며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나도 기분이 확 상한다. 특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유도 없이 나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런 태도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거대한 불꽃이 되어 화르륵 타오르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20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안타깝게도 그런 순간은 수도 없이 많았다. 특히 시스템의 문제인 건지 공적인 일을 하는 곳에서는 유난히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인 거 같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만 내 눈에 띄는 건가? 사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 쓸 일도 아닌데, 별일 아닌 걸로 사람을 괴롭게 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어디에 말할 수도 없고 너무도 답답한 마음이 들어 자꾸 속에서 화르륵 소리를 내며 불꽃이 일렁였다. 그대로 소리를 지르면 판타지에 나오는 dragon(용)처럼 입 밖으로 불꽃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가끔 고장 난 신호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모든 신호등이 꺼져 있다. 대체 이 신호등들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몇 년 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웹툰 <송곳>에서 내가 답답해하던 지점을 짚어주는 인상적인 대사를 만났었다. 태생부터 청개구리에 반골 기질을 타고나 세상 사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적어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위로도 받을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요!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싸우지 않으면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걸 넘을 수도 없어요.”


   주머니에 감추어 둔 송곳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드러날 일은 언젠가 드러난다고. 힘들고 어려워도 마침내 마지막에는 정의와 공의가 반드시 승리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배우며 자랐다, 또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며 미래에도 그렇게 살아갈 거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할 가치는 양보하지 않는 사람, 공정과 정의를 지키는 것에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사람,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을 막아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가진 것이 별로 없더라도 할 수 있는 한 힘껏 선한 영향력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말이다. 앞으로도 나의 청개구리 심보와 반골 기질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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