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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28. 2023

개모차를 위한 변명

강아지를 키우면서 절대 안 할 거라고 다짐했던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 가장 내면의 저항감이 컸던 것이 바로 강아지 유모차, 일명 개모차를 구입하는 거였다. 나의 결심이 맥없이 무너지게 된 건 바로 봉봉이 때문이다.


   1년 전부터 야간산책을 나가면 자꾸 어딘가에 부딪쳤다. 처음엔 '으이구! 조심하지' 라고만 생각했는데, 야간시력은 왠지 점점 더 나빠졌다. 너무 세게 부딪쳐서 뼈가 다칠까 봐 휴대폰 조명으로 비춰주며 산책을 다녔다. 낮에는 너무 멀쩡하게 잘 봐서 단순한 야맹증인가 보다 생각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다니던 병원에 문의했더니 별다른 증상이 없고 백내장도 아니니까 일단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1년쯤 지났는데, 한 달쯤 전부터는 야외뿐만 아니라 익숙한 집 안에서도 벽에 부딪히는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반병원에서의 진료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 검색을 통해 평판 좋고 가까운 안과전문병원을 예약하고 찾아갔더니, 생소하고 처음 듣는 병명을 알려주셨다.


   진행성 망막 위축증이라는 푸들, 레트리버 등의 견종이 겪는 유전질환으로 망막의 혈관이 얇아지다가 사라지며 야간시력을 시작으로 점점 눈이 나빠지다가 최종적으로는 실명하는 병이라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통증은 전혀 없다고. 하지만 딱히 치료법이나 치료방법이 없다고도 하셨다. 다만 익숙한 루틴을 만들어 눈이 멀어도 산책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게 해 주면 잘 지낼 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눈 건강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나 역시 여러 번의 수술과 치료로 실감했기에, 이 상황이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생각할 때마다 안쓰러워 혼자 울기도 했다. 그러다가 봉봉이의 눈이 완전히 나빠지기 전에 더 많은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해 주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지금이라도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 강아지 동반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예전보다 많이 생기긴 했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을 같이 다니기에는 켄넬이나 가방이 꼭 필요하다. 켄넬은 들고 다니기가 너무 버겁고, 골격이 크고 무게도 꽤 나가는 봉봉이를 넣고 멜 수 있는 가방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현실적으로 나와 봉봉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개모차였다.


   이미 펫페어나 몰리스 등에서도 여러 제품을 구경해 보긴 했고, 큰 몰에서 대여해 주는 개모차도 태워봤었다. 근데 항상 봉봉이가 타기엔 조금 좁고 약한 느낌이었다. 개모차 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에어버기는 가격이 너무 부담되어 중저가의 몇 가지 브랜드를 찾아보았다. 너무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튼튼한 바퀴와 본체로 파손 위험이 적은 것이 우선이었다.


   그중 로띠에라는 브랜드의 개모차가 눈에 띄었는데, 작은 강아지는 두 마리도 탑승가능하고, 16kg 강아지에게도 공간이 넉넉할 정도라는 이야기에 최종적으로 구입을 결정했다. 마침 타이밍 적절하게 블랙프라이데이로 할인행사도 하고 있었다. 한 가지 걱정은 봉봉이가 잘 타려고 할까 궁금했는데, 일단 포장을 풀기 시작할 때부터 자기 건 줄 아는지 관심을 보였다.


   무사히 바퀴를 조립하고 나서 일체형 유모차를 잘 펴고 방석을 깔아준 후, 번쩍 들어 개모차에 태웠더니 어리둥절 한가보다. 내친김에 안전하게 고리 연결도 하고 1층까지 시승식을 하러 다녀왔다. 맘에 드는지 편하게 엎드려 즐기는 모습에 안심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봉봉이를 내려주고 개모차를 원터치로 접었다 폈다하는 연습을 하고는 다시 잘 접어두고 봉봉이에게 소감을 물었다.


   봉봉이는 가까이 다가와 몸을 비비며 쓰담쓰담해 달라고 들이민다.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런 행동이 내게는 '나 생각해 줘서 고마워' 말하는 걸로 들렸다. 아프지 않고 건강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장애가 생기고 나이가 들어 아프더라도 쭉 봉봉이와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다. 거의 8년 하고도 6개월째 또 잎으로도 우리는 변함없이 소중한 가족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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