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선택의 기로

[소설] 모퉁이 뜨개방, 마음을 짜는 사람들

by 김펄미

"겉뜨기 한 번, 안뜨기 한 번 번갈아가면서 하는 거예요. 자, 천천히 따라 해보세요. 우선 이렇게 오른쪽 대바늘을 앞에서 뒤로 넣고요, 그다음에 실을 이 방향으로 걸어서..."


"우와, 이렇게 하는 거 맞죠? 저 생각보다 소질 있나 봐요!"


"어머, 그러게요? 차근차근 잘 따라 하시는데요? 지금처럼만 하시면 금방 완성하시겠어요!"


리나와 소소한 잡담도 나누며 열심히 따라 하다 보니 2시간의 뜨개질 수업이 금방 끝나버렸다. 아직 손이 느려 2시간 동안 목도리를 한 뼘 밖에 뜨지 못했지만, 수현은 그것만으로도 너무 뿌듯했다. 그래서 집까지 걸어가는 내내 뜨다 만 목도리를 가방에서 넣었다 뺐다 하며 보고 또 봤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서도, 예쁘게 완성된 목도리를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할 생각에 설레어서 괜히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그러다가 결국 입이 근질거리는 걸 참지 못하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 넣어둔 목도리를 슬쩍 꺼내 소정에게만 보여주었다.


"소정 씨, 이것 좀 봐. 이거 내가 어제 만든 거다? 나 사실 어제 뜨개질 배우러 뜨개방 갔다 왔었거든. 어때? 아직 미완성이긴 한데 예쁘지 않아?"


"우와, 이걸 정말 대리님이 만드신 거예요? 대박, 대리님 이제 보니 금손이시네! 저는 완전 똥손이라 이런 거 알려줘도 못 하는데. 대리님, 이거 완성하면 누구 주실 거예요? 혹시 선물할 사람 없으면 저한테 파세요! 제가 예약 걸어 놓을래요! 네? 저도 이런 핸드메이드 목도리 가지고 싶단 말이에요~"


"뭐, 소정 씨한테 팔라고? 에이, 내가 선물로 줬으면 줬지 무슨 돈을 받고 팔아? 일단 이건 첫 작품이라 의미 있는 거니까 내가 가지고, 다음에 내가 소정 씨가 좋아하는 색으로 다시 떠줄게. 그러니까 그때까지 무슨 색으로 할지 골라놔, 알았지?"


"아싸, 신난다~! 아, 그런데 무슨 색으로 고르지? 사실 아이보리색이 제일 하고 싶긴 한데 괜히 때 탈까 봐서 요. 그냥 무난하게 회색이나 베이지색으로 할까요? 아, 그건 또 너무 평범한데... 차라리 그냥 확 튀게 빨간색으로 질러버릴까요? 그럼 대리님은 노란색, 저는 빨간색이니까 이제 초록색만 한 명 더 구해서 신호등 하면 되겠다! 그쵸? 푸하하!"


겨우 목도리 하나에 호들갑을 왕창 떠는 소정을 보면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렇게 쉽게 즐거워질 수 있는 걸, 여태까지는 왜 안 했을까? 그리 크지 않은 돈으로 취미도 생기고 행복도 살 수 있었는데. 수현은 퇴근 후 소정과 약속했던 케이크 가게에 가서 딸기가 잔뜩 올라간 마스카포네 치즈 케이크를 사서 나눠먹었다. 입안을 가득 메우는 달콤함에 쌉싸름한 아메리카노까지 더해지니까 무한정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살이 뒤룩뒤룩 찌겠다고 깔깔 웃으면서도 포크는 멈출 줄을 몰랐다. 결국 2차로 짬뽕집에 가서 매콤한 해물짬뽕으로 느끼한 속을 달래고서야 소정과의 데이트가 끝나게 되었다.


"어우, 배 터져 죽겠네. 소정 씨, 나 아무래도 내일 점심까지는 굶어야겠어. 오늘 너무 많이 먹어서 음식이 목까지 찬 것 같아!"


"저도예요, 지금 누가 툭 하고 건드리면 바로 뿜을 수 있을 정도라니까요? 아무래도 전 다이어트를 영영 못할 건가 봐요! 푸하핫!"


배도 부르겠다, 소정과 수다도 잔뜩 떨었겠다, 수현은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대리와 김주임의 뒷담화로 인해 우울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즐거웠다. 그래서 집에 도착해서도 씻자마자 침대에 눕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뜨다 만 목도리를 꺼냈다. 오늘 이렇게 즐거울 수 있었던 게 다 이 목도리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수현이 어제 뜨개방을 갔다 오지 않았다면, 오늘 소정과 그렇게까지 신나게 놀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겉뜨기 한 번, 안뜨기 한 번... 맨 처음에 겉뜨기로 시작하는 거였나?"


어제 배웠던 내용을 머릿속으로 더듬어가며 혼자서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 뜨개질 수업을 가기 전에 혼자서 목도리를 완성해 가면 선생님이 얼마나 놀랄까 상상하며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대나무로 만든 대바늘이 서로 스칠 때마다 사악- 사악- 소리가 나는 게 너무 듣기 좋았다. 유튜브에서 잔잔한 빗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나는 ASMR까지 찾아서 틀어놓으니 고요한 숲 속 나무 의자에 앉아 뜨개질하는 기분이 들어 너무 행복했다. 그래, 이런 게 힐링이지. 사람들이 왜 뜨개질을 하는 건지 이제 알겠네.


그런데 한참 동안 뜨개질을 하던 그때, 수현이 갑자기 손동작을 멈추고 뜨던 목도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이 쭉쭉 길어지고 있던 목도리였는데, 순간 무언가가 눈에 확 거슬렸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왜 무늬가 어긋나 보이는 거지?"


수현이 배운 뜨개질 방식은 겉뜨기와 안뜨기를 번갈아가면서 뜨는 고무뜨기 방식으로, 원래대로라면 세로 줄무늬가 가지런하게 배열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수현이 뜬 목도리에는 이상하게도 그 줄무늬가 중간부터 어긋나 있었다.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어야 할 부분이 안으로 쏙 들어가고, 반대로 안으로 쏙 들어가야 할 부분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 뼘 정도로 일정하던 폭도 어느새 조금 넓어져 있었다. 수현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목도리를 손으로 꼼꼼하게 더듬으며 살펴봤지만, 겨우 뜨개질을 하루밖에 안 배운 수현이 잘못된 걸 척척 잡아내고 수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짜증 나! 선생님이랑 같이 뜰 땐 예뻤는데, 왜 나 혼자 하니까 못생겨진 거야?"


수현의 주변은 조용한 숲 속에서 다시 어둑한 방 안으로 바뀌어 있었고, 눈앞에는 초등학생이 만든 것 같은 엉성한 편물 쪼가리가 있었다. 차마 목도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수준이었다. 혼자 자아도취하며 만들던 게 창피해지기까지 했다. 수현의 상상 속 자신은 평화로운 풍경에서 뜨개질을 하는 우아한 여자였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이런 건 줘도 안 가지겠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새벽 2시였다. 뜨개질을 하느라 이렇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니. 수현은 뜨던 목도리를 대충 책상에 놔둔 채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역시 혼자 목도리를 예쁘게 완성하는 건 무리였을까? 그렇게 한번 틀어져버린 목도리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고쳐지지가 않았다. 처음에 18코로 시작했던 게 다시 세어보니 21코로 늘어나 있었고, 정갈했던 무늬도 삐뚤빼뚤해 보였다. 그래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서 뜨다 보니 전보다는 조금은 나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눈을 흐리게 뜨고 보면 틀린 부분이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수현은 더 열심히 목도리를 떴다. 벌레 먹은 나뭇잎도 멀리서 보면 건강하고 푸르른 숲으로 보이는 것처럼, 목도리가 완성되고 나면 이 정도 흠은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전문가는 전문가인 걸까? 수현이 모른 척하고 싶었던 그 흠을, 리나의 예리한 눈이 단번에 알아보고 말았다.


"어머, 여기에서부터 코가 잘못됐네요. 이 부분은 겉뜨기로 하셨어야 되는데 안뜨기를 두 번 하셨어요. 그리고 이쪽이랑 이쪽에서는 코가 한 코씩 늘어났고요. 혹시 뜨면서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셨어요?"


일주일이 지나 두 번째 수업 시간, 리나가 틀린 부분을 콕 집어서 얘기하자 괜히 주눅이 들었다.


"당연히 이상하다고 느꼈죠... 그런데 제가 알았을 때는 이미 한참 더 뜨고 난 후라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선생님, 그래도 이 정도면 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어차피 목에 두르면 티 별로 안 날 것 같은데..."


"그렇긴 하죠. 그리고 이게 돈 받고 파는 물건이면 문제가 있지만, 수현 님이 직접 쓰실 거니까 틀려도 상관없는 게 맞고요. 그런데 수현 님, 그래도 첫 작품인데, 이왕이면 여기까지 다 풀고 고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네? 여기까지 다 풀으라고요? 그럼 거의 50cm 넘게 풀어야 되는데... 저 이거 뜨느라 진짜 오래 걸렸단 말이에요."


수현은 시무룩한 얼굴로 목도리를 내려다보았다. 리나가 말한 부분까지 다 풀어버리면 거의 새로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고민이 되었다. 못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일주일 동안 노력해서 만든 결과물인데...


"안 그러면 계속 이 부분이 거슬릴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고치려면 지금 고치는 게 나아서 그래요. 지금이야 50cm만 풀면 되지만, 나중 가서 다시 풀려면 수현 님 키만큼 풀어야 될 수도 있거든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수현은 침을 꼴깍 삼키며 지난 일주일간 목도리에 쏟아부은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한 번 틀리기 시작하니까 신경 쓰여서 손도 더 느려지고, 뭘 어떻게 떠야 되는지 헷갈려서 한 줄을 뜨는 데도 몇 배로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짧으니까 눈에 더 띄는 거겠지, 목도리가 완성되면 이런 작은 부분쯤은 티가 나지 않겠지, 하면서 퇴근 후에도 매일 목도리를 뜨는 데만 집중했었다. 친구들도 일절 만나지 않고,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까지 멀리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걸 다 풀어 버리라고? 그럼 내 일주일이 다 날아가 버리는 건데...?


"물론 수현 님이 상관없으시다면 안 고치셔도 돼요. 어차피 이건 수현 님의 작품이니까 수현 님이 선택하시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실래요? 지금이라도 풀고 고치실래요, 아니면 그냥 이대로 쭉 떠서 완성하실래요?"


리나의 물음에 수현은 섣불리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더 예쁜 결과물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 결과물을 위해서 버려야 하는 것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뜨개질을 하느라 어깨에 근육통까지 생겼는데, 이걸 다 날리고 다시 긴 시간을 들여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소정 씨한테는 금방 완성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까지 해놨는데, 실력이 부족해 다시 뜬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결국 수현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선생님, 저는 그냥 안 고치고 이대로 뜰래요. 어차피 파는 물건도 아닌데 저만 괜찮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 어차피 취미로 하는 건데 좀 엉성하면 어때? 일단 완성하는 게 중요한 거지. 수현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초보자가 이 정도 떴으면 잘한 거지, 굳이 완벽할 필요 있나? 내가 힐링하려고 뜨개질을 배우는 거지, 뜨개질 달인이 되려고 배우는 건 아니잖아!


"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해요. 그럼 여기서 다시 코를 줄여버리면 더 이상해질 것 같으니까, 그냥 21코로 늘어난 그대로 계속 뜰까요? 제가 다시 제대로 알려드릴 테니까 이제부터는 틀리지 않게 조심하셔야 돼요~"


리나는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으면서 첫 시간에 배웠던 겉뜨기와 안뜨기를 다시 보여주었다. 수현은 이제부터라도 잘 하자라고 생각하며 리나의 손동작에 집중했다. 이제부터는 집에서 혼자 뜨더라도 절대 틀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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