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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청객 Aug 25. 2022

셋, 외로움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

외로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어려서 서른 중반을 상상했을 때, 대단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대수롭지 않고 어떤 일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보니 나는 아직도 대부분의 일들에 초연하지 못할뿐더러 매 순간 바람에 힘없이 나부끼는 갈대 같다.



독립 후 22일째 되던 날,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울음의 이유는 명치 언저리에 잘 눌러 두고 있다고 생각했던 외로움이 목구멍을 넘어 범람해오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 첫 독립은 비단 생활공간의 독립 만이 아니었다. 4년을 다녔던 직장으로부터의 독립, 그곳에서 정들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5년을 만났던 연인으로부터의 독립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리셋 버튼이라도 누른 듯 한 번에 바뀌었고 나는 혼자 남았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괜찮지 않다고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을 맞아 (원래 살던) 집에 갔다. (전체 맥락과는 상관이 없지만 원래 살던 집을 '집'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나는 언제쯤 제대로 된 독립을 할 수 있으려나 싶다.)



공교롭게 아빠도 동생도 주말에 일정이 있어 혼자 집에 있게 되었다. 기숙사에서도 혼자 있었으니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시켜 먹고, 못 본 드라마를 보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기숙사에 들고 갈 짐을 챙겼다. 미국에 사는 친구와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하며 근황을 나누었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의 시간이 가까워왔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때 마침 버스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아빠가 집에 왔고 아빠는 버스 정류장까지 나를 데려다주셨다. 주말인데 차가 밀리지 않아 예상보다 기숙사에 일찍 도착해서 빨래와 짐을 정리했다. 다음 날은 여느 때처럼 출근을 했고 일이 많아 정신이 없었지만 풀리지 않던 기획안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게만 기술하면 대체 어디에서부터 내가 외로움을 느꼈고 그래서 결국 울고 말았는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한 발짝 떨어져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나의 감정을 되짚어보면 내가 울었던 이유는 부끄럽지만 ‘주인공병’ 혹은 ‘공주병’이라고 정리할 수밖에 없다. 장장 세 시간을 걸려 집에 갔으니 아빠도 동생도 주말의 모든 시간을 나와 함께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직 새로운 환경과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나의 마음을 헤아려서 위로해주었으면 했다. 둘 다 주말에 일정이 있었더라도 내가 버스를 타러 집을 나서기 전 집으로 돌아와서 나를 배웅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래 놓고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내가 바라는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자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은 나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목구멍까지 차올라 범람했던 것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외로움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한다.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격리되었을 때 느끼게 된다고 정리되어 있다. 독립 후 첫 번째 울음은 내가 타인과의 소통을 단절시켜 놓고 격리되었다고 착각하여 느낀 가짜 ‘외로움’이었다. 아빠와 동생이 둘 다 주말 약속이 있는 것을 알았다면 나도 약속을 만들었으면 된다. 아빠나 동생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면 솔직하게 말했어도 될 일이다. 타인과 소통하려는 노력 없이 타인이 나와 소통해 주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다가 아무도 오지 않자 나는 격리되었다고 단정 짓는 태도는 한참이나 덜 자란 아이 같다.



철학자 틸리히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고독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인생 첫 독립을 마주하고 있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외로움을 느끼기에 앞서 내가 타인을 필요로 한다면 ‘필요하다’고 제대로 소통하려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손을 내민 적도 없으면서 거절당해서 외롭다고, 그래서 슬프다고 우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나는 언제쯤 제대로 외로워볼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외로움을 느끼는 날이 온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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