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청객 Aug 25. 2022

넷, 질문

집에서도 바쁩니다

질문 

알고자 하는 바를 얻기 위해 물음






기숙사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내가 기숙사에 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다. ‘혼자’라는 단어와 ‘심심하다’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붙어 다니는 것도 이상했지만, 나는 기숙사에 혼자 있으면서 심심하다는 감정을 느낀 적은 (아직까지는) 없다. 퇴근시간과는 상관없이 10분이면 기숙사에 도착하는 나는 저녁 시간이 항상 많았다. 그럼에도 그 많은 시간이 모자라게 느껴질 만큼 심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긍정하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은 간단한 안부의 인사로 건넸을 질문에 부정의 대답을 건네며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어쩐지 어색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내가 차마 사람들에게 들려주지 못한 ‘집에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이유’(100점)에 대해 서술해보려고 한다.



우선 저런 질문을 한 사람들은 집안일과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고 (논리적인 이유로) 확신한다. 집안일은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지만 열심히 안 하면 바로 티가 나서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런 억울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집안일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그것은 내가 독립해서 살고 있는 곳이 기숙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온전한 나의 집이 아니고 기숙사였기에 집안일을 하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뜻하지 않은 장벽들이 많았고, 그래서 집안일의 세계는 더욱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세제와 빨래통을 들고 세탁실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야 했다. 세탁실에 있는 세탁기가 모두 동작 중이라면 기다려야 했다. 좁은 베란다에 있는 건조대에 빨래를 널기 위해서는 보다 효율적으로 빨래를 널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다. 기숙사의 공간이 넓지 않았기에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쓰기 위해서는 어질러진 물건들을 빠르게 치워야 했다. 공간을 고려해 들여놓은 작은 쓰레기통은 금방 차서 빨리 비워내야 했다. 무한히 기술하면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가 될 수 있어 이만 줄이지만, 집안일만 하더라도 나는 심심할 틈이 없었다.



집안일 외에도 할 일은 많았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자유롭게 하지 못했던 일을 마음 놓고 했다. 독서와 글쓰기가 대표적이었다. 가족들이 독서와 글쓰기를 금지시킨 것은 절대 아니지만, 같이 사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혼자만의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독립하고 나니 혼자 있을 때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일들을 편하게 찾아서 할 수 있었다.



‘집’이라기보다는 방에 불과한 공간이었지만 독립된 나의 공간을 꾸미는 일에 한동안 시간을 쏟기도 했다. 집에서도 내 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나 마음가짐이 달라서 일까. 작은 시계 하나를 살 때도 다른 가구와의 조화를 생각해 신중하게 구매했다. 소비는 소비를 부른다고 하나의 아이템이 본인의 자리를 찾고 나면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들여놓기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했다.



업의 특성상 트렌드를 멀리하면 안 되기에 밀린 뉴스레터를 복습하기도 했고,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도 놓치지 않고 챙겨봤다. 첫 번째 독립을 경험하게 된 나를 걱정하고 궁금해하던 이들과 카톡이나 전화로 다정한 대화도 때때로 나누었다. 심지어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당장 시작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았다. 운동하기, 운전 연수받기, 새로운 취미 생활을 위해 무엇인가 배워보기 등등.



혼자 독립해서 살고 있다고 해서 꼭 심심한 것은 아니다. 어떠한 전제가 꼭 하나의 결론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고 우리는 이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받았던 질문이 불쾌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받은 질문에 서술형 답변을 작성하면서 되짚어보니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내포된 어떤 질문은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내가 “이러면 이렇지 않아?”라는 성급한 질문을 했다면 그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뒤늦은 사과를 전하고 싶다.

이전 03화 셋, 외로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