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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청객 Aug 25. 2022

다섯, 믿음

진실과 거짓은 상관없어요

믿음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나는 의존적인 사람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5년을 만난 남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독립도 해야 한다니. 나의 성향을 잘 알아서인지 많은 것들로부터 독립할 때 사실 외로운 감정보다 두려운 감정이 더 컸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평소에는 ‘그걸 무서워서 어떻게 보지?’라고 생각했던 신점도 별로 무섭지 않은 지경이었다. 그렇게 인생 첫 번째 신점을 봤다.



잠깐 고해성사를 하자면 나의 종교는 (독실하지는 않지만) 천주교다. 그렇지만 템플스테이를 4번이나 다녀올 정도로 절을 좋아하고, 주기적으로 타로나 사주는 본다. 이렇게 종교 및 샤머니즘 대통합의 마인드를 가진 나조차도 꺼려했던 신점을 본 것은, 인생 첫 독립을 앞두고 심적으로 아주 불안정한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결론만 놓고 보면 신점의 결과는 좋았다. 직장, 연애, 건강, 금전 모든 카테고리에서 좋은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좋은 이야기들은 마음에 남지도 않았다.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나의 구남자 친구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양다리였어. 심지어 만나면서 여러 번 양다리였어. 손버릇도 안 좋았네. 도박 같은 거. 그런 것도 했네. 능력도 없이 일을 너무 많이 벌여 놓았네. 빚더미야. 빚 때문에 형제의 난도 있었네. 마마 보이지? 잘 헤어졌어.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부정했다. 내가 5년 동안 알던,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과는 너무 다른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의 입에서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내 기억 속의 남자 친구는 흐려지고 오히려 새롭게 창조된 쓰레기 같은 그 사람이 진짜같이 느껴졌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자책의 늪에도 빠졌다. 나는 얼마나 바보 같았는가, 얼마나 사람 보는 눈이 없으면 심지어 여러 번이었다는 양다리를 눈치조차 못 챘는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감과 촉이 좋다고 자부하고 살고 있었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 죽은 자식 불알을 만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양다리의 징조라고 의심되는 순간들을 아프게 꺼내어보며 되새김질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허무한 감정이 들었다. 결론은 이별이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예쁘게 쌓아온 5년이라는 시간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따지고 싶고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그래 맞아. 나 양다리였어”라는 말을 들으면 나에게 더 상처가 될 것이고, “아닌데”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서 딱히 개운할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알고 싶어 하는 병에 걸려 있다. 그래서 나는 남자 친구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버릇이다. 많이 묻는 만큼 대답도 많이 얻는 것은 당연하니 ‘나는 모든 것을 다 안다’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얻어낸 답들이 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은 하지 않았다. 물어봤고, 대답을 들었고, 그것이 적어도 내 세상에서는 진실이었다. 남자 친구가 ‘꼬미’라는 누군가의 애칭 같은 이름을 나에게 잘못 불렀을 때도 그가 구구절절 풀어낸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나는 진실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어쩌면 남자 친구의 바람이라는 소식이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믿는 세상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고 누가 뒤통수를 세게 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숱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거쳐 인생의  독립을 겪고 있는 내가 내린 결론은 ‘나를 믿고 내가 믿는 세상을 믿자였다.  순간에 내가 어떤 말을 듣고 그렇게 생각했다면  순간의 나를 믿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  순간의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어느 영화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있을 . 물론 누군가가 내가 믿는 세상을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진실과 거짓이 명백히 보이고 나를 비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누구의 세상이 아니고 나의 세상이지 않은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도  세상을 믿어주는 것도 나뿐이다.



그래서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나의 남자 친구는 나를 5년 간 진심으로 사랑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특히 엄마를 잃고 허공을 부유하던 내가 이 세상에 다시 정을 붙일 수 있게 도와준 안정적인 ‘추’였다. 5년간 나도 그를 많이 사랑했고 그래서 그가 하루라도 빨리 깊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길, 누구보다 진심으로 바라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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