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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Jan 18. 2021

손으로 꾹꾹 눌러쓴 마음

우리가 주고 받은 것들


새해가 시작되어 장기간 묵혀둔 물건 정리를 했다. 이번 주말 정리대상은 편지와 다이어리였다. 청주에 이사 온 2016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받은 편지들이 작은 상자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손바닥 반만 한 작은 것부터 A5 사이즈까지 다양한 크기, 색상의 편지였다. 수신인은 나로 동일했지만, 발신인은 서울, 부산, 울산, 제주, 거제, 청주, 밀양 등 각지에서 온 것이었다. 봉투에서 꺼낸 편지에는 지난 5년의 세월이 담겨 있었다. 2번의 이직과 1번의 이사, 새로운 모임 활동까지. 계속되는 도전과 만남, 이별의 순간마다 편지 속 지인들은 내게 다정한 응원과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나를 위한 마음들이 글자 위에 새겨져 있었다.       


요즘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SNS, 카카오톡 같은 간편한 소통 기능을 두고서 굳이 손으로 글씨를 쓰고, 그 편지를 부치는 번거로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내가 아마 이전부터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 일을 이어오고 있진 않았으리라. 나의 중학교 시절엔 편지로 소통하는 일이 흔한 편이었다. 수업 중 선생님 눈을 피해 옮긴 꼬깃꼬깃 접힌 쪽지부터 친구 책상 서랍에 몰래 넣어두던 편지까지. 그 시절 우린 주고받는 이야기의 밀도보다 수북이 쌓인 편지의 수가 우정의 깊이를 대변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편지와 교환일기를 썼다. 유행하는 가사에도 쉽게 감정이입이 되던 나는 넘치는 감정을 나눌 친구가 필요했다. 혼자 쓰는 일기보단 함께하는 편지가 좋았다. 좋아하는 노랫말, 시의 구절, 다양한 고민거리까지. 편지에는 마주하며 주고받는 우스개 농담보다 말하기 힘든 고민이나 우물쭈물한 고백이 편히 써졌다. 나는 종종 누군가와 말 못 할 일이 생기면 정리되지 못한 말을 하기보단 속마음을 글자로 옮기며 마음속 엉킨 실타래를 풀어냈다. 진솔한 글은 상대방과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그렇게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 되어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이젠 감사 인사도 메시지 한 통으로 쓱, 주고받는 선물도 클릭 몇 번으로 툭, 보낼 수 있다. 나 역시도 이 편리함을 자주 누리곤 한다. 다만, 그것이 내 삶의 당연한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몇 분이면 해결되는 편리함 속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림을 기다림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에게 오는 편지를 받으려 퇴근길마다 우편함을 열어보는 기다림, 상대방을 생각하며 쓴 글이 그 사람에게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 재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들이 존중받길 바란다.     

 

나는 지난 5년간 받은 편지를 통해서 온전한 사랑과 위로를 느꼈다. ‘잘 지내고 있지?’, ‘언제나 응원해’,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어.’ 편지 속 글자는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고 그곳에서 나를 지켜봐 주었다. 편지로 느낀 마음을 상대방에게 다시 전하고 싶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천천히 눌러쓴 글자에 감사의 마음을 함께 동봉하여 그에게 보내고 싶다.




-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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