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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7. 2016

<거품 예찬>

최재천

<거품 예찬>  최재천


                          강 일 송


오늘은 “통섭”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자연과학자이면서 인문학에 조예가

깊어 두 영역을 넘나드는 책을 많이 쓰고 있는 최재천교수의 책을 보겠습니다.

저자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나오고,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석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교수를 거쳐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오늘 책은 짧은 단편적인 글들의 모음집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지성과 감성, 과학과 인문이 조화된 그의 글 중 2편 정도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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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품 예찬


맥주의 고장 독일에서는 거품이 전체의 30퍼센트가 돼야 진정한 맥주 맛이

난다고 한다.  맥주는 거품이 예술이다.

그런데 거품하면 질색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경제 분야이다.

이른바 시장 가치가 내재 가치보다 과대평가되면 거품경제가 형성되는데

불균형한 과잉투자로 인해 시장의 안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경제학

자들은 대부분 기겁을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 언제 수요와 공급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적이 있는

가?  폐쇄경제 체제라면 모를까 공급 경쟁 없이는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모름지기 넘쳐야 흐르는 법이다.


진화란 영역에서는 거품은 기본이다.  자연은 스스로 지극히 낭비적인 삶의

방식을 택했다.  조개나 산호 같은 해양 무척추생물들은 엄청나게 많은 알을

낳지만 그 중에서 성체로 자라는 개체는 종종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식물도 엄청나게 많은 씨를 뿌리지만 극히 일부만 발아하여 꽃을 피운다.


몸집이 큰 생물일수록 자식을 덜 낳지만 확실하게 기를 만큼만 낳아 모두

성공적으로 길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모하리만큼 많이 태어나고 그중에서

특별히 탁월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번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바로 자연선택의

힘이 발휘된다.  그 결과로 적응진화도 일어나는 것이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마지막 단서를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찾았다.  자연이 스스로 선택해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거품이었다.  하지만 맬서스의 이론은 자연계의 거품은

인정하면서 경제의 거품은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 해도 거품 빠진 맥주는 정말

못 마신다.



◉ 행복의 수학공식


<마이 시스터즈 키퍼>(감독;닉 카사베츠)라는 영화의 원작소설을 쓴

조디 피쿠가 또 다른 소설 <19분>에서 소개한 행복의 수학 공식이

있다.  그에 따르면 행복의 공식은 “현실÷기대”란다.  분수로 표현하면

현실은 분자이고 기대는 분모가 된다.


그렇다면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 셈이다. 우선 분자인

현실을 개선하는 방법이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 방법을 사용하여

보다 행복해지려 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이는 결코

만만한 방법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이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분모를 작게 하는 것이다.  분수의 값을 하려면 분자를 키우는

것보다 분모를 줄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4분의 99에서 분자를 하나 키워본들 4분의 100, 즉 25밖에

안되지만, 분모를 하나 줄이면 3분의 99 즉 33이 된다.

법정 스님께서 설파하신 무소유를 실천하면 분모가 아예 0(영)이 되어

행복은 분자에 상관없이 무한대가 된다.  가난한 나라 부탄은 국민의

97퍼센트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단다.


대학 시절 어느 동아리 문집에 이런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함박눈이 흩날리는 명동길을 걸어 벗들이 기다리는 찻집에 들어설

때 코끝을 간질이는 두향차 내음,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내 주제에 뭘 원한다고 그리될 리 있겠는가 생각하며 늘 별 것

아닌 일에 행복을 운운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남들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던데 나한테는 여태껏 가슴이 먼저 뛰고 나면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대만큼 안 되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

들이고 작은 것에 만족하려 애쓰며 산다.


이렇게 얘기하면 자칫 내가 일찌감치 노력을 안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것은 아닌가 싶겠지만 나는 사실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산다.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살 뿐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의 반만이라도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숨죽이며 산다.


평생 그렇게 살았는데 뜻밖에 노력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얻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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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재천교수의 두 편의 글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글은 자연계의 기본 원리가 거품이라는 것이었는데요,

결국 자연은 선택되어지는 개체의 수보다 훨씬 많은 수를 공급하여 그 중

최적의 개체만 일부 생존하고 그 유전자가 후대로 전해져서 점점 더 적자

(適者)로 되어가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생명 논리로는 자본주의 시장처럼 수요 공급 일정한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과잉공급으로 생명계를 유지하는 방식을 맥주의 거품으로 비유하여 저자는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글은 행복을 공식화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행복은 “현실÷기대” 인데 생각해 보면 참 맞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의 삶에서 저성장의 시대에 분자인 현실을 높이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수준으로 기대를 낮추고, 저자처럼 최선을 다하고 낮은 기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결과가 나올 때 많이 흐뭇해하고 즐거워하는 자세가 참 현명해

보입니다.


저자의 대학 시절 글을 다시 한번 보면,

“함박눈이 흩날리는 명동길을 걸어 벗들이 기다리는 찻집에 들어설

때 코끝을 간질이는 두향차 내음,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진정 저자는 자연과학도이면서 누구보다 문학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함박눈이 와서 쌀쌀한 날씨를 가로질러 다정한 벗들이 기다리고 있는

찻집에 들어가니 훈훈한 실내의 기운과 함께 코에 들어오는 두향차 내음..

세월이 지나도 이 광경을 떠올려 보니, 덩달아 행복감이 번져옵니다.


세상사에 있어서 내가 할 일은 다하고, 그 결과물은 큰 기대를 하지 않되

조그마한 성과나 성취라도 크게 만족하고 기뻐하는 태도, 다른 사람의 좋은

일도 약간 오버하듯이 같이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자세,

이런 것이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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