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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Mar 10. 2021

<기후가 결정한 동서양 건축의 차이>

“공간이 만든 공간”(Ⅱ)

<기후가 결정한 동서양 건축의 차이>
“공간이 만든 공간”(Ⅱ)

                                                해헌(海軒)

오늘은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한다는 인문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책을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유현준(1969~)교수는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건축학전공 교수입니다. 연세대학교
건축과 진학하였고 이후 MIT 대학원 건축설계과, 하버드 대학원 건축설계과를 나왔습니다.
tvN의 <알쓸신잡>2에서 셜록 현준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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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량이 결정한 건축 공간의 특징

기후는 건축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초의 문명은 건조 기후대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 문명에 속한 우루크의 집들은 진흙 벽돌로 벽을 세워서
만들었고 지붕은 평평한 모양이었다. 비가 적게 내리기 때문에 지붕은 그다지
중요한 건축 요소가 아니었다. 대신 벽은 영역을 구분하고 지붕을 받치기 때문에
중요한 건축 요소였다. 주변의 외적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거대한 성벽도
세워야 했다.

기원전 8500년경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 유적물인 ‘괴베클리 테페’도
엄밀하게 보면 지붕은 없고 벽만 있는 건축이다. 이처럼 최초의 건축 요소는 ‘벽’
이었다. 수메르의 문명과 건축 기술이 북서쪽의 유럽으로 전파되었는데, 이때 비가
적게 내리는 유럽의 밀 농사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게 벽돌이나 흙을 이용한 벽 중심의
건축이 계승되었다. 바뀐 점이 있다면 유럽은 수메르의 건조 기후대보다는 비가 더
많이 내렸을 테니 지붕에 약간의 기울기를 두어서 빗물이 흐르게 하는 정도였다.

반면, 벽 중심의 수메르 건축 양식이 동쪽으로 전파되었을 때는 그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극동아시아에는 장마철에 집중 호우가 내리기 때문이다.
집중 호우가 내리면 땅이 물러지게 되어서 벽돌 같은 무거운 재료로 만든 벽은
옆으로 넘어가 집이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동양의 일부 북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건축 재료로 가벼운 목재를 사용해야 했다. 목재를 사용하면 다 좋은데,
물에 젖으면 썩어서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땅과 만나는 부분에는 방수 재료인
돌을 사용하여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다 나무 기둥을 세웠다. 나무 기둥이 비에
젖으면 안 되기 때문에 처마를 길게 뽑아서 비에 맞지 않게 지붕 디자인을 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만들어 빗물이
잘 흐르게 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지붕을 덮는 방수재료로 흙은 구워서 만든
기와를 사용했다. 그런데 기와는 무겁기 때문에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더 굵어야
하고, 기둥 재료도 더 비싼 큰 나무를 써야 한다.

기와로 만든 지붕은 무겁고 기둥도 더 굵어져서 집이 전체적으로 더 무거워졌다.
주춧돌 같은 좁은 면적의 기초를 다지게 되면 기둥이 침하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무게를 땅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더 넓은 기초가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는
더 많은 돌을 써서 넓은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
기와를 사용하면 건축비뿐 아니라 토목공사비가 더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돈이 많은 부자일수록 더 큰 주춧돌과 더 높은 기단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에 가장 큰 주춧돌을 가진 건축물은 무엇일까?
왕이 사는 ‘경복궁’의 ‘경회루’다.

가장 높은 기단부 역시 ‘경복궁’에 있는 건물들이 가지고 있는데, 기단부의 높이를
보면 건축주의 권력 양을 측정할 수 있다. 기단은 재력을 나타내는 척도다.
지금도 우리나라 부잣집은 성북동, 한남동의 경사 지대에 높은 축대를 쌓은 집이다.
현대 도시에서의 축대는 조선시대 때 기단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무거운 돌로 기단을 만들 재력이 없었던 일반인들은 기단없이 주춧돌만 두고
집을 지었고 비싼 기와를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 가을에 추수하고 남은 볏단을
활용해서 지붕을 덮었다. 볏단은 가볍기 때문에 지붕을 받치는 나무 기둥도 굵은
재료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기와집이 부의 상징이 된 것이다.

★ 동양과 서양의 건축 차이

벼농사 지역과 밀 농사 지역의 건축은 다르게 발전해 왔다. 따라서 사람들이 공간을
이해해는 방식도 다르게 진화해 왔다. 밀 농사 지역은 벽 중심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벽에 창문을 내려고 구멍을 크게 뚫으면 집이 무너진다.
그래서 창문의 크기가 작다. 게다가 유리가 보급되기 전에는 창문을 유리창이 아닌
나무로 만든 문으로 가려야 했다. 유리창은 고딕 성당 같은 엄청나게 비싼 건축물
에나 설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집 안에서 창문으로
바깥 경치를 볼 수 없었다.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는 투명한 창문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에서 서양의 건축 공간은 내부와 외부가 확연히 나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이것이 서양 건축의 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바라볼 경치가 없기 때문에 그림과 조각으로 실내를 과도하게 꾸몄다.

그에 반해 전통적인 동양의 건축은 입면을 디자인할 때 서양만큼 신경쓰지 않았다.
동양의 건축물을 보면 건물의 입면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지붕이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 때문에 방수를 하는 지붕이 가장
중요한 건축 요소였다. 빠른 배수를 위해 지붕의 기울기도 급하다.
그러다 보니 앞에서 바라보면 지붕이 건물 입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난방 시스템이 무거운 돌로 만든 온돌이어서 2층짜리 집이 없었다.

그래서 건물을 지으면 입면에서 지붕이 절반을 차지하고 지붕을 받치는 나무기둥이 있을
뿐이다. 동양은 나무 기둥을 이용해서 건축되었는데, 기둥 구조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벽이 필요없다. 그러다 보니 기둥과 기둥 사이는 뻥 뚫린 개방감을 갖기 쉽다.
게다가 중국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가 있었기에 유리가 보급되기 훨씬 전부터 창문을 크고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여름철 더울 때는 통풍을 위해 창문을 접어서 들어 올려 처마
밑에 걸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벽이 없는 건축이 된다.
비가 와도 처마가 길게 가려주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아도 비가 들이치지 않아서
창문을 열고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이렇게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감이 동양건축에서는 발달하게 되었고, 동양은
안에서 밖을 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건축물의 배치를 결정한다.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건축 디자인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변이 보이기 때문에 건축에서 주변 상황 및 요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건물 뒤에는 산이 있어야 하고, 남쪽을 향해 창이 열려야 하며, 남쪽으로 물이 흐르면
좋다. 뒤에 산이 있고 앞으로 강이 흘러야 대지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그래야만 비가 와도 배수가 잘 돼서 땅의 침하가 적고, 습기가 적어서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의 원리가 나온 것이다.

동양에서 건축물이 자연을 바라보게 하는 프레임으로 작용한다면, 서양에서는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건축이 되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랜 시간 존속되는 건축물이
적은 것이다. 잘 썩는 목재라는 재료 자체의 제약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동아시아에는 ‘피라미드’나 ‘하기아소피아 성당’
같은 거대한 규모의 덩어리를 갖는 건축물이 적다.
대신 건축물 안에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기 좋은 건물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들
에게 경복궁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해주려면 ‘근정전’이나 ‘경회루’를 밖에서만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 안에서 바깥 경치를 보게 해 줘야 우리 문화의 진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처마를
예쁘게 색칠한 단청을 만든 것이다.

★ 정리해보면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 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의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은 밀 농사의 혼자 농사하는 방식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커졌고, 외부와
단절된 창문 없는 벽 중심의 건축으로 바깥과 교류가 적은 성격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건축물 역시 독립된 개별적인 건축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축적
개인주의’가 발전했다.
반면에 벼농사는 집단 농사 방식으로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가치였으며, 많은
강수량 때문에 사용하게 된 재료인 목재를 이용한 기둥 중심의 건축 양식은 외부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양식으로 발전되었다.

강수량 차이로 인해서 서양은 독립된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동양은 관계를 중요시
하는 사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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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 두 번째 리뷰를 함께 보았습니다.
저자는 건축을 인문학적,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명쾌하게 풀어
내고 있습니다.

역시 인간의 삶은 기후, 자연환경, 지리 등에 강한 영향을 받는데, 최초의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건조기후대였고 비가 잦지 않았기에 지붕의 중요성이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서쪽 유럽으로 전해진 건축양식도 크게 다를바가 없어
벽으로 공간을 분리하는 개념의 건축이 주를 이루었고, 반면 동쪽으로 진출해서는
강수량이 많아 비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자 지붕의 중요성이 커진
건축 양식이 필요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건물도 바깥에서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고, 내부에서 외부를 봐야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던 서양 건축은 스테인드글라스나 나무창 등 내외부 소통이 적은 구조
였고, 동양은 기둥을 세워 만든 건축구조라 벽이 크게 중요하지 않고 외부와 서로
소통하는 양식이 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서양은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었고
돌로 만든 건물이 많았기에 오래 존속되는 건축물이 많은 반면, 동양은 잘 썩는
목재로 대부분 건물이 지어졌기에 화재로 손실되거나 빨리 소실되는 경우가 많았
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건축물을 제대로 외국인에게 보여주려면 밖에서만 볼게 아니라
반드시 내부로 들어와 밖을 바라보게 해야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지요.
그리고 기와집은 무거운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큰 돌과 큰 나무를 사용하여
비용이 많이 들었고, 기와집은 그 집의 부의 상징이 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밀 농사와 벼농사의 특성이 다름으로 인해 개인주의 성향과 집단주의 성향이
나타났으며 이로인해 같은 민주주의의 정치 형태라 해도 전혀 다른 느낌의 민주주의
가 보여지게 됩니다.  
강수량의 차이로 인한 이런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타나고, 또 위도에 따른 태양열의
많고 적음에 다양한 인종의 특징들이 등장했다고 하지요.
인문학의 공부를 건축의 양식을 통해 다양한 방면을 넘나들며 배우게 해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하루,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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