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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0. 2016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강 일 송

오늘은 원로작가 황석영(1943~)의 산문집을 하나 보겠습니다.

저자는 고교 재학시절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합니다. 베트남전 참전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탑>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삶의 이력을 보여줍니다.  젊은 시절 해병대로 베트남전쟁을
치르고 돌아왔고, 대표적인 진보작가로 북한을 방문한 후 수감생활도 하였습
니다. 

그의 글을 한 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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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춤에 매달렸던 벤또

최초의 도시락은 아마도 주먹밥이었을 것이다.
남정네들이 집 부근의 논이나 밭에 나가 일하는 동안에 아낙네들이 대광
주리나 채반에 밥과 반찬을 얹어 나르던 일은 오래된 행사였을 터이다.

들밥은 품앗이나 두레로 이루어진 공동 노동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집집이 돌아가면서 여럿의 농사일을 협동하여 서로 해주는데, 이때에
새참이나 끼니도 공동으로 해결하였다.
비록 햇보리밥에 제철 푸성귀뿐이었지만 인심은 풍성하여, 지나가는 나그네
라도 보이면 손짓하여, 들밥 좀 같이 자시고 쉬어서 가시라고 불러대는
것이었다. 

옛날 전쟁 기록에서 보면, 병정들도 마찬가지여서, 밥을 주먹만하게 뭉쳐서
가운데에다 장을 찍어 바르거나, 소금을 적당히 풀어놓은 물에 두 손을 
담궜다가 간간하게 밥을 뭉쳐서 주먹밥을 만들었다. 
도시락은 대나무나 왕골, 덩굴줄기로 작은 고리 상자를 짜서 만들었다.
이것을 허리춤 또는 지게 모퉁이에 매달기도 하고 일터에 가서는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나뭇가지에 걸어놓기도 하고 옹달샘에 담가두기도 했다.

하여튼 음식이란 여럿이 함께 먹을 때와 노동을 한 뒤의 것이 훨씬 맛있고
풍성한 자연 속에서 입맛이 더욱 살아나게 마련이다.
우리 기억 속에 ‘도시락’은 우리말 가꾸기로 나중에 바뀐 말일뿐, 그
맛과 함께 남아 있는 말은 일본말인 “벤또”이다. 

도시락 반찬의 변천사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는 반찬 칸이 밥과 함께
있던 터라 뭔가 양이 적으면서도 짭짤한 것이 필요했다.
김치가 도시락 반찬의 대종을 이루었지만 때로는 멸치볶음이나 콩자반
이니 각종 건어조림이나 어포볶음 등이 많았다.
해방 뒤에는 무슨 서양 요리처럼 등장한 계란프라이는 밥 위에 그대로
얹어서 부잣집 반찬 행세를 했다.

그러나 어디 우리네 전래의 장아찌에 비길 만한 도시락 반찬이 있을
것인가!   철철이 나오는 채소와 해물을 뒤뜰의 장독대에 있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덜어내어 담가두기만 하면 되었다.  대개는 한 해만
묵히면 깊은 맛에 쫄깃하고 아삭거리는 장과를 만들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정체도 모를 미국식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어른들도 야외에만 나가면 그저 고기를 떡 벌어지게 지글지글 구워서
독주에다 실컷 마시고 쿵쾅거리는 가라오케 가계를 틀어놓고
법석댄다.

장아찌는 장독대가 사라지면서 백화점의 반찬가게로 옮겨갔고, 서로
담 너머로 장을 빌리거나 찬을 나누고 들밥을 함께 먹던 문화는
식구끼리의 외식 문화로 바뀌었지만, 실천하기에 따라서는 회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 고봉밥을 먹어치우는 밥도둑놈

내가 해남 가서 처음으로 후배를 사귀어 선물을 받은 것 두 가지가 
있으니 그중 첫 번째가 “어란”이다. 작은 항아리에 무슨 훈제 소세지
같은 것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훈제 소세지처럼 생긴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영암 어란”이었다.
영암은 예부터 영산강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영산포를 끼고 있고
서쪽으로는 너른 갯벌을 지니고 있었다. 
바다에서 잡히는 숭어가 아니라 갯벌에서 잡히는 숭어를 “참숭어”
라고 따로 부르는데, 영양이 풍부한 갯벌에서 잡힌 숭어는 특히 
아랫배가 축 처질 정도로 큼직한 알집을 배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항아리에 들었던 것은 “토하젓”이었다.  토하젓은 장성
것을 예부터 으뜸으로 치는데 민물새우로 담근 젓이다.  진짜배기
토하젓은 새우의 몸체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야 싱싱한 향내가 
난다.   토하젓을 집어 씹어보면 몸이 탁탁 터지면서 향긋한 흙냄새
가 난다. 그래서 토하젓이다. 
이 토하젓을 한 젓가락씩 집어다 밥에 살살 비벼 먹으면 기가 막힌데
비벼서 잠깐 놓아두면 이내 밥알이 삭아버린다. 그래서 소화제라고도
부른다. 

전라도는 가히 젓갈의 고장이라 하겠다.  멸치젓, 황새기젓은 어디나 
있는 것이고, 갈치속젓이나 돔배젓은 전라도 특유의 것이다. 
전어밤젓은 타관 사람들도 한 젓가락 맛을 보면 우리나라 이밥 반찬
의 진수임을 알게 된다. 또한 참게장은 논이나 방죽에서 잡아다가
다진 쇠고기와 함께 항아리에 넣어 장을 부어 담근다.
참게딱지 하나로 고봉밥을 먹어 치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도둑놈’이다.

아가미젓은 무와 함께 담가서 아삭이는 맛이 좋고, 갈치젓은 담가서
무쳐 먹기도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멸치젓국과 함께 김장에도 넣는다.
서산 어리굴젓이 신선하게 속성으로 발효시켜 먹는 거라면 전라도
굴젓은 보다 맵고 짜게 담가서 오랫동안 발효시킨다.

설록이니 작설이니 하는 차로부터 모과차니 유자차니 하는 것들이며,
항아리에 닭뼈를 넣어두어 지네를 모은 다음에 그대로 담그는 지리산
오공주며, 쌀로 내린 소주에 진달래를 담가 오래 묵힌 진도 홍주며,
독하지만 얼른 깬다는 영광 토주며 하는 마실 것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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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시대의 거장, “황석영”작가의 산문집을 보겠습니다.
그는 고교시절에 이미 단편소설로 신인 문학상을 받을 만큼 문학에 탁월
한 재능을 가진 작가입니다.

첫 번째 글은 벤또(도시락)에 관한 옛날의 추억 글입니다. 
들밥을 먹는 풍경을 보자면 참으로 넉넉합니다. 주위 지나가는 나그네라도
불러서 같이 밥을 나누는 모습, 품앗이로 같이 서로 도우며 사는 모습들.
바로 아파트 옆집도 누군지 모르고 사는 지금은 보기 힘든 광경이지요.
그리고 예전에는 고봉밥으로 수북하게 쌓아서 밥을 먹었지만, 요즘은
갈수록 쌀소비량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밥 아래 계란프라이를 넣고, 교실 한가운데 있던
조개탄 난로위에 도시락을 올려서 점심때 따뜻하게 먹었던 시절이 새록
새록 되살아납니다. 빨리 도시락을 올리지 않으면, 뒤에 올린 위쪽의
도시락은 온기가 전해지지 않아 아침에 서로 일찍 올리려고 신경전이
있었지요.

두 번째 글은 이 책의 제목인 “밥도둑”에 관한 글입니다. 
전라도 해남에 가서 그 곳의 토속적인 음식들을 접한 후, 글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역시 전라도는 음식의 고장입니다.  너른 평야, 다도해의 
바다에서 나오는 풍부한 어산물들은 이 곳을 맛의 고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영암어란”, “토하젓”, “갈치속젓”, “돔배젓”, “전어밤젓”, “참게장”
“아가미젓”, “전라도 굴젓”, 등, 밥을 금방 먹게 만드는 진정한 밥도둑들
이네요. 

정치적인 색을 떠나서 황석영작가는 우리말과 우리 문학의 지경을 넓힌
대작가 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번 일독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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