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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pr 03. 2018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

“위기에서 기회를 엿보다- PMI의 달인 이성계”


                                      강 일 송


오늘은 조선의 인물들을 통해 현대의 리더십을 되살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리더십에 관한 수많은 이론과 가르침이 있지만 우리의 역사를 통해 우리만의 “한국형

리더십”은 없을까 하고 시작한 생각의 결과가 이 책입니다.


저자는 이영관(1964~) 교수로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6년에 코넬대학교 호텔스쿨의 교환교수로 미국에 머물렀고

국제관광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스펙트럼 리더십>, <조선 견문록>, <한국의 아름다운 마음>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리더십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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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I(Post-Merger Integration)의 달인 이성계>


1335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난 태조 이성계는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담대했으며

뛰어난 궁수였기에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1361년 박의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였고 홍건적의 개경 침공 때는 사병 2천 명을 거느리고 수도 탈환 작전에 참여하여

큰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는 30여 년을 전쟁터에서 보냈고, 1388년에는 고려의 최고 관직인 문하시중의 바로

아래인 수(守)문하시중까지 오르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이성계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는데, 철령 이북 땅을 차지하고 지속적

으로 무리한 조공을 요구하는 명에 대항해 요동을 공격하라는 임금의 명령이 바로 그것

이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이성계였지만 이 전쟁에서는 승리할 자신이 없었다.

당시 군 최고통수권자인 팔도도통사 최영장군과 우왕의 뜻은 완강하였다. 그는 고민 끝에

승부수를 던졌다. 1388년 5월의 일이었다.


승부사 이성계는 좌군통도사 조민수와 함께 위화도회군을 감행하여 단숨에 우왕을 제압

하고 고려왕조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1392년 7월 정도전과 이방원 등의 추대를 받아

이성계는 임금(태조)으로 등극했다.


★ 한양천도로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세우다.


임금이 된 이듬해 명나라의 도움을 얻어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이성계는 조선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있어서도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기업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PMI(Post-Merger

Integration)의 달인이라 할 만큼 이성계는 조선 건국 후 빈틈없는 전략과 지략으로

신왕조의 기틀을 공고히 하였다.


PMI란 인수합병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합병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제거

하여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성계는 한양천도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풍수지리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이끌어냈다. 하륜, 정도전, 무학대사 등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고 의견

통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 후보지로 거론된 신촌 일대, 계룡산, 북악산 주변 지역 중 태조는 직접 돌아보고

옛 고려의 남경(南京)이었던 한양의 옛 행궁을 궁궐터로 확정했다.

대공사의 책임자는 정도전이었는데 그는 탁월한 능력으로 기대이상의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이성계는 불편한 객사에서 생활하면서 공사현장 가까이 있었고 이는 신하

들과 백성들에게 큰 믿음을 주었다.


리더에게 도전이란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통과의례이고 그 과정에서 리더의 지도력은

자연스럽게 검증된다고 볼 수 있다. 위기 상황에 뒤에 숨어있기보다 전면에 나서는

리더가 부하직원들에게 더 큰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 왕자의 난을 슬기롭게 수습한 태조


개국 후 공신세력과 예우 문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는데, 특히 정도전과

자신의 다섯째 아들, 방원 간의 권력다툼이 심화되면서 태조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지만 싸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


결국 1차 왕자의 난으로 세자 방석과 정도전은 방원에 의해 제거당하였고 태조는

하늘을 찌를 만큼 진노하였다. 태조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었는데, 하나는 그가 가진

모든 권력으로 방원을 치거나, 아니면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조는 냉철하였다.

그는 스스로 물러나 상왕이 되고 미련없이 권력을 방원에게 물려주었다.

영웅이란 앞으로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행동해야 함을 몸소

보여준 것이었다.


만일 그가 방원과 끝까지 싸웠다면 그 혼란을 틈타 또 다른 영웅이 나타나 조선이 아닌

새로운 왕조를 세울 기회를 가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함흥차사란 말이 있을 정도로 태종 이방원이 보낸 차사를 죽이고 거부했지만, 무학대사의

청을 뿌리치지 않고 한양으로 돌아와 태종과 화해를 하게 된다.


리더는 사사로운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감정통제능력을 키워야 한다.

리더는 수시로 찾아오는 사사로운 감정을 제어하면서 조직의 목표와 공익을 우선시하는

이타주의적 책무에 충실해야만 존경받는 위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함께 일할 사람들을 고르고 일을 맡기고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하며 그 성과를 보여주는

것,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자신의 개인적인 선호와 관계없이 조직의 발전을 위해 후계를

챙기는 것 등 이성계의 일화 속에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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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통해 우리의 리더십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이성계는 북방의 전장에서 30여 년을 보낸 진정한 무장이었지만,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

과감한 실행력을 보여줍니다.

위화도회군을 감행하여 고려를 무너뜨린 그는 새로운 나라의 체제를 잡고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여 새 시대를 열어나갑니다.


이때 다양한 변수가 발생하는데, 어느 나라나 처음 개국때 공신들과의 갈등은

필수적으로 보이지요.  개국 공신들과 자기의 아들, 즉 왕자들과의 관계는 늘

견제하고 경쟁하는 관계였습니다.  특히 가장 대범하고 강한 다섯 째 이방원은

정몽주를 죽이고 정도전까지 제거합니다.


여기까지에서 이성계의 남다른 점은 변방을 지켜야 하는 무장이었지만 결국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고,  하륜, 정도전, 무학대사가 신도읍을 두고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을 때

여러 조건들을 종합해 현명한 결단을 내렸다는 점입니다.


또한 아들 이방원이 세자 방석과 정도전을 죽이자 하늘을 찌를듯이 분노했음에도

냉정하게 사태를 분석하고 미래를 위해 과감히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았고

결국 태종 이방원과도 화해를 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둡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합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이를 잘 판단하고 변화에 발맞추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마인드와 실행력이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큰 리더십의 CEO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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