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고 눈부시게! 컬러뿜뿜 앙리 마티스

책짚고 인터넷 헤엄치기 #9

by Dr 뻬드로

day 297.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도서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 중 308쪽.


1869년 프랑스 피르카디 출생

1889년 법을 전공하면서 18세에 법정의 행정업무로 근무하던 중 맹장염에 걸렸고 회복기간 중에 어머니가 갖다준 미술도구로 처음 그림을 그리면서 재능을 발견하고 급기야 법공부를 그만두고 파리로 감.

아카데미 줄리앙에 등록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에게 배움.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작업실로 초대받음

에꼴 드 보자르(l'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입학

야수파 창시자로 그림활동을 많이 하다가 삽화 작업도 하였고 인생 후반에는 종이오려서 그림그리기에 몰두함

1954년 프랑스 니스에서 사망


앙리의 쌤 윌리엄, 귀스타브, 에꼴 드 보자르 학교


색이 지닌 아름다움과 심리적 힘을 찬양하는 예술운동인 야수파(포비즘 Fauvism)를 창시한 화가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대중적이던 사조와 달리 강렬한 색을 사용했다고 '짐승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일까요? 아무튼 인상주의(정확하고 객관적)를 겨냥해서 반대했다고 합니다. 야수파는 색상의 폭탄을 던진 것으로 보였나봅니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의 Three Dancers, Green Blouses
앙리 마티스의 Dance

인상주의 에드가 드가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다릅니다. 드가의 그림은 문구점에서 만날 수 있는 1000피스 퍼즐의 그림으로 나올 법한, 부드럽고 따스하면서 실제 사람의 비율과 색상을 그대로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야수파 작가들이 그런 부분에 반기를 든 게 아닌가 합니다. 사춘기 소년의 반항도 기존의 질서와 패턴에 대해 무조건 반대로 하듯 모양을 단순화 하고 천연색이 아닌 더 강렬한 원색을 칠했네요. 마치 주황색 페인트통을 사와서 색깔 배합 전혀, 신나 전혀 섞지 않고 캔버스에 부어버린 것처럼요.



아래는 앙리 마티스의 대표작품입니다. 앙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깊이 생각하는 표현주의가 싫었다고 합니다.

앙리의 대표작. 삶의 기쁨 (The Joy of life) 1906


1930년대에는 주로 삽화작업을 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들어갈 동판화는 아래와 같습니다.



말년에는 '가위로 그림그리기 기법(cut-outs)'으로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창시자입니다.

피카소의 콜라주까지는 아닌 듯하고 특정 무늬로 색종이를 잘라서 넓은 캔버스에 붙이는 모습입니다.

순서는 대략 (정확하지는 않음)

1) 흰종이에 원하는 색으로 칠한다

2) 가위로 모양을 내며 잘라낸다

3) 그 모양을 종이에 핀으로 고정한다

4) 습자지에 그림을 따라그려낸다

5) 빈 종이에 붙인다

6) 액자에 넣어 완성


자세한 방법은 MOMA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moma.org/interactives/exhibitions/2014/matisse/the-cut-outs.html



정-반-합의 무한궤도?


선배 화가인 인상주의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마음에 안든다고 하며 과감하고 강렬한 색상을 사용했던 야수파 앙리 마티스. 이후에 따라오는 큐비즘 후배들은 역시나 앙리 마티스를 존경하면서도 부정하면서 더 잘게 쪼개고 재조합하는 작업을 보였으니. 끊임없이 정반합 정반합인가요? 이 역사를 그저 안방에 앉아서 읽는 나로서는 그저 그들의 창의성과 실행력이 존경스럽고 "이거나 저거나 더 낫거나 열등할 것 없이 다들 대단하십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멋진 작품활동을 했던, 그 시대의 누구보다도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작품활동을 했던 화가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각자의 시대를 풍미하고 당대에는 한 획을 그은 화가들의 발자취를 후대 사람으로서 더듬어 볼 때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바라보게 되니까 더 그렇습니다. 유한한 한 시대를 살다 간 그들의 역사 말입니다.



겸손해집니다.

지금까지 미술사의 거장들을 몇 명 살펴보면서, 어쩌면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시공 초월 절대자의 시간개념, 머릿 속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기독교에서는 '카이로스'라고 설명하며, 태어난 일도 죽을 일도 없는 영원한 존재인 신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의 나무 몇 그루를 보고 복닥거리며 투닥거리며 희로애락을 겪으며 실연하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반응하는데, 신은 숲전체를 모든 시간대를 한번에 알고 모두다 알고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굳이 말해주지않는 관점이죠.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시공간의 제한 속에 살다가 언젠가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 거장들을 생각하며 내 존재의 본질을 생각하며 겸손해집니다.


그나마 미술작품을 남기면 괜찮은 거겠죠? 저는 글을 남겨보겠습니다.



https://www.wikiart.org/en/henri-matisse


다음 글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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