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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훈 Nov 09. 2020

프리랜서라는 개똥밭에 굴러도 퇴사할 것인가?



퇴사하고 싶다

내 꿈은 퇴사


스치듯 접한 한 신문사의 기사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취업포털 사람인은 2019년, 416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입사 1년 미만 신입사원 중 퇴사 비율이 무려 74.8%라고 밝혔다. 이 수치는 지난해 결과인 66.2%보다 8.6%나 상승한 숫자다. 


길게는 수년 동안 준비하여 입사한 회사 아닌가. 게다가 현재와 같은 극심한 불경기를 감안했을 때 도무지 믿기지 않는 수치다. 기성세대가 말하듯이 청년들이 배가 부른 것일까?


하지만 이것은 비단 신입사원들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직장인은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 ‘내 꿈은 퇴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원이든 과장이든 공공연하게 회사와의 이별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취업 관련 전문 매체인 리쿠르트 타임스에 따르면, 퇴사 사유로는 이직, 업무 불만, 연봉 불만, 잦은 야근, 복리후생 부족 그리고 상사와의 갈등 순이었다. 또한 퇴사율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퇴사율이 증가하는 원인 또한 연봉 문제가 가장 많았으며 과도한 업무량과 야근, 회사의 비전이 불투명한 것을 이유로 꼽았다.


때문에 기업들은 어렵게 채용한 직원의 유출을 막기 위해 정시퇴근 권장, 근무환경 개선, 복지혜택 확보 및 보상체계 확립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재의 추세가 줄어들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퇴사율 증가가 자발적 의지라면, 비자발적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우선 업(業)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때문에 비대면 근무가 늘어나고, 정규직보다는 실무 능력을 중시하는 프로젝트성 채용이 이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있고, 코로나 19 사태를 빌미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우려할 점은, 산업화의 산물인 공채와 같은 시스템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게다가 실무 경험을 중시하다 보니 신입사원이 설 자리는 더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신입인데 경력이 하나도 없네요?”라는 질문이 예능 프로가 아닌 실제 면접에서 맞닥뜨리게 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업률은 구매력을 하락시키고, 이는 기업의 경영난을 야기한다. 이런 악순환은 취업률 하락을 동반하며 악영향을 되풀이한다. 


또한 인구 하락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한다. 기업들은 인구가 적은 국가보다는 많은 인구가 있는 국가, 다시 말해 노동력이 풍부한 곳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곳의 내수 시장도 노릴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 유출을 우려한 국가들은 리쇼어링(미국), 인더스트리 4.0(독일) 같은 정책을 펼치며, 해외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을 자국으로 회유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의 경제 불황이 코로나 때문이라고 애써 믿어왔지만, 결국 조만간 도래할 미래였던 것이다. 그저 이 최악의 역병이 몇 년 앞당긴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들이 프리랜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한국은 출산율 0.92라는 세계 꼴찌의 저출산 국가다. 조만간 길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을 거라는 으름장은 조만간 우리에게 맞닥뜨릴 운명이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한국은 가생산 인구의 부족으로 기업유출이 가속화될 것이고,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로봇에게 양보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중국을 지나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로 진출하는 기사를 접할 때면, 산업동력 쇠퇴는 지금의 출산율처럼 생각보다 일찍 도래할 미래일 수 있다.


2020년 5월 KBS가 맥킨지와 진행한 정부 용역 보고서에는 놀랄만한 숫자가 담겨있다. 참고로 이 보고서는 비공개로 진행되었는데, 내막을 알고 보면 일견 이해될 만도 하다. 보고서는 디지털의 대체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향후 10년간 7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우리나라 노동자 2300만 명에서 1/3에 해당하는 숫자다.


사라지는 직업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제조업, 서비스업, 미용사까지 AI 로봇에게 자리를 내줄 예정이다. 심지어는 회계사나 세무사와 같은 전문직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사라지는 직업이 있다면 다시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아무런 진통 없이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프리랜서의 현실


이것이 불과 몇 년 안에 도래할 미래다. 시중에는 돈이 마를 것이고, 이미 일자리를 잃었거나 잃게 될 사람들은 가능한 단단히 지갑을 닫을 것이다. 만약 1차 생산자가 아니라면, 이러한 미래가 현실로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프리랜서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너도나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마당에, 있는 직원마저 내모는 상황에, 프리랜서에게 일감을 줄지 의문이다. 아니 일감 자체가 있을지 모르겠다.


경제적 궁핍은 누구에게나 비참하지만, 벌이가 안정화되지 않은 프리랜서의 삶은 비참하고 바쁘다, 그리고 슬픔을 대동한다. 프리랜서는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는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끝도 없는 요구나 비매너에 목젖까지 분노가 치밀지만, 밥줄인 그들을 서운하게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조차 사치일 수 있다.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회사를 떠난 선택에 대한 후회가 겹쳐지고, 결국 자신을 미워할지 모른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회사를 뛰쳐나왔지만, 주말마저 사라진 미래를 마주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2년의 세계여행을 끝마치고 준비했던 시도들이 연달아 실패했다. 생활비를 아끼고자 세간살이를 줄여 고시원으로 들어가던 날, 속상한 마음에 사 온 술을 채 마시지도 않고 숨죽여 울었다. 서른 후반이라는 나이가 누르는 미래의 갑갑함과 과거의 아쉬움이 동시에 몰아쳤다. 


직장을 다니면서 잠자는 시간을 아껴 스페인어와 인도네시아어를 독학하고, 여행작가를 대비하며 글쓰기를 연습하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관심도 없는 SNS를 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리고 떠난 2년의 세계여행과 귀국 후 2년간의 노력은, 수조에 떨어진 물감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매일이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프리랜서의 현실은 차가웠다. 

프리랜서의 장점


물론 프리랜서의 장점도 있다. 우선은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출퇴근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의미 없는 미팅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보고서의 폰트와 크기를 두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동료와 얽매일 필요가 없다.


두 번째는 주도적인 경력 개발이다. 오로지 필요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대리 3년 차에 승진을 위해 필요 없는 교육점수를 채울 필요가 없다. 고객들과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은 오롯이 나의 포트폴리오가 된다. 퇴사를 하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명함 속 직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성취감이다. 처음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짜릿하다. 처음의 스페인어 수업, 처음의 세계여행 컨설팅, 처음 의뢰받은 강연을 기억하면 아직도 두근거린다. 인터넷에서 나의 수업이 처음 판매되었을 때, 고맙다는 때론 개선점을 언급해준 수강생들을 만났을 때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 ‘오롯이 내 것을 해나가고 있다’는 성취감은 프리랜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동전에 앞면과 뒷면이 있듯 세상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이제와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몇몇의 불편한 상황을 제외하면 즐거웠고 유익했고 감사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갈고닦은 업무처리와 인간관계는 현재 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울타리 밖을 동경한다. 그러니 왜 퇴사를 했냐고 물어본다면, 그저 퇴사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프리랜서는 땅에 떨어진 자존감을 어르고 달래면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믿고, 고객들이 돈을 주고 살만한 제품으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을 반복하며, 최선을 다했어도 때론 비참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자율성과 주도적인 경력개발을 앞세워, 조금씩 성취감을 쌓아가는 직업의 한 형태다.


너무도 일이 풀리지 않아 간혹 친구들을 만나 하소연을 늘어놨던 적이 있다. 얼마 전 시골로 오기 전에 그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는데, 그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다.


“프리랜서라는 개똥밭에 굴러도 다시 프리 할 거야?”


나의 대답은 “그럴 거 같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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