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

직업일기

by 교우

우리는 그냥 태어난다. 태어날 것을 선택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태어나고 나면 태어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괴롭다.


피고인이 왔다. 그의 죄명은 상습절도였다. 그는 이번에는 은행에서 고객이 놓고 간 휴대폰을 훔쳤다. 누범기간이고, 법정형에 징역형밖에 없었다. 법적으로 징역형 선고를 피할 길이 없었다. 나는 훔친 것을 인정한다는 그에게 말했다. 선고가 나면 실형일 수밖에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그는 말했다. 수감 생활이 너무나 괴로웠기에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고, 그냥 그전에 죽고 싶다고.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 속에서 지갑을 꺼내고 다시 지갑 속에서 작은 지퍼백을 꺼냈다. 그 속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있었다. 애써 침착한 척을 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중식 주방장으로 일한 경력이 오래라 이 가루를 먹으면 죽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늘 죽을 것에 대비해 가루를 가지고 다닌다고. 나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그를 다독여 돌려보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재판은 여타의 일들처럼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그의 구속만이 남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몇 번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달 만에 결국은 붙잡혀 구속됐다. 사실 그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계속 선고기일이 연기될 때마다 나는 불안했었다. 오지 않는 것인지, 오지 못하는 것인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지만, 어디 물어볼 곳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서 가족들의 연락처라도 받아 놓으려고 애썼지만, 그는 극구 거부했었다. 그러는 와중에 붙잡혀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살아있었으니.


그렇게 그가 구속되고 나서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때, 구치소에서 연락이 왔다. 지난밤 그가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검사를 해보니 백혈병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수감 생활을 할 상황이 아니고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구치소에서 내어 준 그의 진단서와 그의 아들의 연락처를 받아 들고, 이번에는 그의 병원 치료를 위해 노력해야 했다. 나는 아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나는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이제야 아들의 연락처를 알아 연락을 취하게 되었음에 양해를 구했다.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아들은 이미 구치소로부터 연락을 받아 아버지의 병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의 병환으로 몹시 초조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신청에 필요한 서류 같은 것을 빠르게 안내했다. 아들이 무슨 서류를 마련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을 거라 마음대로 생각하면서. 그런데 내 예상과 다르게 아들은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다고 했다. 아들은 수화기 너머로 울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믿을 수 없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물건을 훔치지 않고 아들이 벌어온 돈으로 생활할 수 있음에도 절도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지만 소용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버지는 자주 물건을 훔치고, 자주 도피 생활을 하고, 도피 생활 중 아들과 연락이 닿으면 물건을 훔쳐서 도망 다니는 게 아니라고 잡아뗐다고 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구치소를 나와 제대로 치료를 받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차라리 그곳에 계시는 게 나을 거 같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이후로 구치소에서는 어떻게 구치소에서 병든 사람을 데리고 있느냐, 자식이 아버지를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로 내가 아들을 설득해 주기를 바랐다. 구치소로서는 건강이 위태로운 범죄자까지 책임질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그 책임을 누가 가져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피고인도 나에게 면역력이 매우 떨어진 상태에서 사람들 사이에 있으려니 두렵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들에게 병든 아버지와 병든 아버지가 치료를 받지 않고 도피를 갔을 때의 상황을 책임지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아들에게 혹시 생각이 바뀌거든 연락을 달라고 하고, 그 상황을 그대로 두었다. 결국 구치소는 당장 내일이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범죄자를 가둘 수밖에 없었고, 법원은 신병을 인수할 사람 없이 피고인을 풀어줄 수 없었으며,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사건이 항소심으로 넘어가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그의 변호인이 아니었다. 이제 뭘 더 하려야 할 수 없으니 홀가분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몇 달 후, 나는 그의 안부가 궁금해져 재판진행경과를 찾아보았다. 그는 항소심에서 공소기각결정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공소기각결정을 받을 만한 다른 사유가 없었다. 그의 사망 말고는.


그는 어떤 삶을 살다 간 것일까. 그것은 그가 원하던 죽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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