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기
새해라면 보신각 종도 치고, 그걸 집구석에서 tv로 볼지언정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박수를 쳐야 하는 것 아닌가.
올해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그럴 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럴 맘이 티끌만큼도 생기지 않는다.
숫자가 바뀐다는 생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걸로도 희망이 차올랐는데. 그 알량한 마음도 솟아나지 않을 만큼 가라앉은 새해다.
나는 메모리를 정리하면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내가 일을 할 때 쓰는 컴퓨터에서 해가 묵은 파일들을 옮겨두고, 삭제하고. 내 휴대폰에 들어있는 사진들을 옮겨두고, 삭제하고. 하루 종일 그걸 하고 있으니 그 파일들에 무게가 생겨 나를 누른다.
"더 들여다보지도 않는 걸 뭐 하러 모으고 있어. 그냥 버려. 홀가분하게." 파일들이 말을 걸어오는 기분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과거의 사진들을 어쩐지 나는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에게 과거는 괴로웠기 때문일까. 온갖 글들도 그렇다. 혹시나 하고 모아 두지만, 그게 다시 필요할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무게는 없지만 짐인 것은 결국 같다.
몇 시간을 앉아 메모리를 정리하다가 결단을 내린다. 어지간하면 지워버리기로. 별로 좋지도 않았고, 별로 기억되지도 않고, 별로 쓸모도 없을 것 같은 그것들은 과감히 털어버리기로. 가볍게 털어내버리고 싶은 걸 보니 작년의 기억이 정말 별로였었나 싶다.
어쨌든 괴로웠지만 의미 있었던 작년보다, 털어내고 살아내고 싶은 올해의 마음이 현재이고, 그게 우선이다. 그러니 털어내기로 마음먹고, 과감하게 메모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어째 가벼워진듯한 내 노트북과 핸드폰에 마음이 나아진다.
애써 나아졌다고 할 필요 있나. 사실은 아니다. 슬픈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