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기
주말을 맞아 빈둥거리던 아이가 플로깅을 한다며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챙겨달라고 한다.
나는 아이 혼자 길에 내보내기가 꺼림칙해 봉지를 들고 따라나선다. 같이 길을 걸으면서 봉지라도 잡아줄 심산이었다.
길에는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았다. 요즘은 잎담배 피우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담배꽁초는 별로 없을 줄 알았건만 걸음걸음마다 담배꽁초에 먹고 돌 사이에 쑤셔 넣어버린 빈 캔에 쓰레기가 많기도 했다. 아직도 쓰레기를 이렇게 아무 데나 버려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니 이걸 줍는 게 무슨 봉사활동인가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줍는 사람 따로 있나 싶어서 하는 것 없이 아이를 따라다니는 내내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길바닥만 보면서 걷다 보니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골목 안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골목가 공터에 큰 새장이라 해야 할지 웬 철장 같은 게 있었다. 안에는 까치 몇 마리가 휏대에 앉아 있고, 개 중 한 마리는 좁은 철장 안을 반복하여 날았다. 아이는 티비에서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이 아플 때 저렇게 반복해서 같은 공간을 맴도는 것이라고 했다면서 누가 까치를 가둬서 동물학대를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경찰에 신고를 하자고 했다. 나는 누가 왜 까치를 가둬둔 것인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어서 주저하다가 며칠 후에 다시 이곳에 와 보고 그때도 까치들이 갇혀서 괴로워하고 있으면 그때 신고를 해보자고 아이를 다독여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정보를 좀 찾아보니 그 큰 새장 같이 생긴 것은 사실 일종의 조류 포획틀이고, 까치는 유해조수로 지정되었기에 포획틀에 잡히는 처지였다. 나는 아이에게 슬프지만 우리가 본 건 까치를 잡기 위한 포획틀이고 까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새이기 때문에 그걸 잡는 행동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곧 씻으러 가겠다며 화장실에 들어간 아이가 펑펑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급속도로 떨어져 미래가 암울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암울하다는 미래를 뜯어보면 철저히 경제적 관점의 미래를 의미한다. 기성세대는 나이 들어 부양이 필요한데 부양을 할 미래세대는 자라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거지 같은 세상을 아이에게 물려주면서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아이가 자라나 이런 환경을 물려준 부모들을 아주 원망한대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먼 미래에 아이도 줄고 인간도 줄어 다들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미래가 오히려 암울하지 않을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