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업무로 몇 주간 다른 회사 사람들과 교육을 받을 일이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8시간 내내 교육에 중간중간 이해 여부 확인을 위한 퀴즈까지.
처음엔 의무 교육으로 앉아만 있으면 되는 줄 알고 마냥 좋아했다.
그런데 나중에 실제 업무에 투입되는 걸 알고 타 회사 사람들과도 서로 안쓰러워하며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10분 일찍 교육이 끝나 룰루랄라 바로 튀어 나갔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바로 옆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저절로 들렸다.
"저녁에도 왜 이렇게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와.
...
또래가 있음 얘기도 하고 좋겠는데"
때마침 차들이 정차해 있었는지 유독 그 얘기가 크게 들렸다.
누군지 안다.
내 뒷자리에서 교육받는 타 회사 사람들이다.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사람도 구체적으로 누군지 안다.
교육장 내 타 회사 사람들 중에도 쉬는 시간마다 얘기하고 챙겨주는 사이도 있는데 이 사람과는 직접 얘기한 적은 없고
아침에 그쪽 사람들한테 인사할 때 눈만 마주치는 사이였다.
지난주인가 쉬는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이 사람이 옆사람과 성인발레도 했다며 운동 얘기하는 걸 듣긴 했다.
헬스센터, 댄스센터, 요가, 어떤 유형의 운동인지 모르겠으나 퇴근하고 저녁에 운동을 하러 가나 보다.
운동하는 장소에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아 기분이 좀 그렇다는.
나랑 같은 노선을 타고 자주 얘기를 나눈 다른 사람은 맞장구도 안치고 그냥 듣고만 있었다.
순간적으로 맘 편하게 뻗고 있던 다리를 좀 오므리고 어깨도 좀 움츠러든 거 같다.
나이 든 사람도 직장 다니고 퇴근하면 늦게 운동하고 갈 수도 있는데.
나이 든 사람일수록 운동을 더 해야 한다는데.
저 사람이 얘기하는 나이 든 사람은 몇 살 정도를 의미할까?
내가 아침마다 인사하는데 나이 든 사람이라고 싫어하진 않았을까?
그 회사 사람들 중 유일하게 나랑 대화를 안 하던 사람이다.
교육이 일주일 정도 더 남아서 아침 녁으로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
그래도 다른 회사 사람이라 교육 끝나면 마주칠 일이 없어 다행이다.
평소엔 궁금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얘기하는 당사자는 몇 살인지 궁금했다.
10시 넘어 딸이 퇴근했다.
저녁은 안 먹었는데 배고프지는 않다며 식탁에서 간단히 요구르트랑 과일이랑 먹는다.
"나이 든 사람이라고 하면 몇 살 정도를 의미하는 걸까?"
슬쩍 물어봤다.
"왜?"
퇴근 때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 사람은 몇 살인데? 20대야?"
"잘 안 봐서 모르겠는데 20대는 아닐 거야."
"그럼 30대야? 20대는 뭐 30대 껴준대?"
"그치? 보통 중학교 때 나 서른 살 되면 죽어버릴 거야, 하고 나이 드는 거 싫어하지 않아? "
결론은 없다.
그냥 나이 든 사람들이라고 할 때 찔리면 나이 든 건가 보다.
어느 순간부터 나잇값도 못하고라는 말이 찔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턴가 보다.
내가 나이 든 순간은.
세상은 거울. 웃어.
사람 앞일 모른다.
우물물에 침 뱉으면 3년 후 내가 마시게 된다.
다리 다치고 세상 불편하게 출퇴근하면서 더 체감하고 무서워하는 말이다.
다음날 교육장에 갔을 때 똑같이 인사했지만 그 사람 얼굴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다음 달 그 회사의 다른 사람과 얘기하다가 그 사람이 30대인 걸 알게 되었다.
20대도 안 껴주는 30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진 않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