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jksmuseum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만났다
가볍게 호텔에서 아침을 해결하며 다미는 오늘의 일정의 테마를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어제 보았던 샤넬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타 볼까 고민하던 다미는 바로 그 앞에 있었던 웅장한 미술관이 기억이 났다.
"그래, 박물관에 가자!"
구글 지도를 킨 다미는 바로 근처에 있는 국립미술관, 반고흐미술관을 발견하곤 바로 호기 좋게 티켓팅을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다. 관람객이 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두 미술관 모두 날짜와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다미는 몇 초간 고민 끝에 일단 외관이 화려했던 Rijksmuseum(국립미술관)을 먼저 예약했다. 사실,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은 반고흐 박물관 이였으나 한국에서 온 다미는 유럽풍 느낌이 물씬 나는 라이크스뮤지엄 외관이 더 맘에 들었다. 그래서 단 몇 초만에 좀 더 유럽풍 느낌이 나는 건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하나로 라이크스뮤지엄으로 스타트를 끊은 다미였다.
"여행은 손은 가볍게 마음은 풍족하게!"
달랑 핸드폰만 챙겨 나온 다미는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빗줄기에 호텔에서 급하게 우산을 빌리고 길을 나섰다. 한국의 장마철처럼 장대비가 내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맞고 가기엔 꽤 굵은 빗줄기였기에 당연하다는 듯 우산을 챙겨서 나왔다. 때아닌 겨울비에 바람까지 맞서 싸우며 날씨 요정은 도대체 어디 갔냐며 투덜투덜거리며 얼마나 걸었을까 다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우산을 쓴 사람이 다미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랑비도 아닌데, 다들 맞고 다니네. 날씨도 추운데 감기 걸릴 텐데."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상당히 퀄리티가 좋은 심지어 보온을 위한 누빔처리가 되어 있는 우비를 입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몇천 원 주고 사던 비옷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보온과 방수기능, 게다가 디자인까지 모두 갖춘 우비를 보며 다미는 미술관 관람 후 저 우비를 반드시 사야겠다는 다짐을 할 정도였다.
미쳐 우비를 입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그냥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머리가 쫄딱 젖을 정도가 되어도 그냥 맞고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어른 어린아이 할거 없이 하늘에 내리는 비가 마치 영양제라도 되는 듯 유유자적 비바람을 견디며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마치 해님과 바람 동화 속에서 바람과 싸우는 나그네를 보는듯한 강인함이 느껴지는 네덜란드인들 앞에서 다미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다, 어릴 때부터 저렇게 단련돼서 이렇게 비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는 건가."
이래 저래 사람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라이크스뮤지엄에 도착한 다미였다.
어제 보았던 샤넬 스케이트장을 배경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술관을 멀찌감치에서 사진에 담은 다미는 설레는 마음으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입구 앞에는 슈트를 차려입은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고 들어서자, 바로 젠틀한 직원이 다가와서 다미의 우산을 가리키며 락커룸으로 인도했다. 암스테르담의 대표 미술관답게 내부는 매우 넓고 체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었다. 우산을 들고 락커룸에 가자, 직원은 다미의 재킷과 우산을 받고선 꽤 귀여운 택을 건네줬다.
"우왕! 너무 귀엽잖아! 이건 찍어야 돼."
다미는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귀여운 우산 락커룸 택을 찍으며 날씨요정대신 우산요정이 와주었다고 신이 나서 흥얼거렸다. 여행의 묘미는 이렇게 생각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작은 행복이라고 다시 한번 느끼며 고급스러운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장관을 마주했다.
"우와....."
다미는 아직 작품을 보기도 전에 미술관 자체가 예술작품인 공간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로 한걸음만 들어가면 17세기 황금기를 누렸던 네덜란드 회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건물의 내관에 매료되어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1885년에 오픈한 라이크스뮤지엄은 미술에 전혀 지식이 없는 다미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한참을 목이 빠지게 고개를 들고 천장부터 벽면까지 감상한 다미는 벅찬 감동을 느끼며 드디어 17 세기 네덜란드의 회화작품을 만나러 들어갔다.
처음 보는 작품과 작가였지만 그림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은 다미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의 위협을 감지하고 달아나기 위해 날갯짓을 막 시작하려는 백조는 당장이라도 그림에서 나와서 날아오를 거 같았다. 다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관람객도 감탄을 하며 몰려들어 다미는 코너에서 비스듬히 사진에 담아냈다. 멋진 작품을 잘 보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허락한 네덜란드 왕국에 감사 편지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수많은 그림을 감상하는데 마치 지친 자신을 바라보는듯한,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어린 소녀의 동공과 눈이 마주치자 다미는 흠칫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깃털 하나하나, 드레스의 레이스의 정교함도 놀라웠지만 소녀의 깊고 간절한 눈동자를 마주 본 순간 숨결 하나도 조심스러웠다. 소녀의 손에 들린 깃털이 제 호흡에 흔들리랴, 다미는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과부하가 왔다. 너무 많은 훌륭한 작품을 몇 시간 동안이나 눈에 담고 나니 발바닥과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미리 공부를 해서 보고 싶은 작품을 먼저 볼걸 하는 후회가 막심한 다미였다. 하지만 이내, 유명한 걸작만 찾아다니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우연히 만나는 그 순간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다미였다. 물론 라이크스뮤지엄의 모든 작품들의 가치는 다 어마어마하겠지만 몇몇 작품에서 받았던 감동을 핸드폰 앨범을 통해 다시 한번 꺼내어 느끼며 다음 전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미는 빛의 화가 램브란트를 만났다.
모든 관람객이 이 그림 하나를 보기 위해 모인 것 같았다. 발 디딜 틈도 없었고 안 그래도 작은 다미는 장신의 네덜란드인 사이를 힘겹게 뚫고 들어가 램브란트를 만났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불러오는데 큰 기여를 한 램브란트는 초상화가로써 명성을 날리다가 '야경'을 완성한 뒤 악평을 받고 추락하고 만다. 결국 마지막 날까지 궁핍한 삶을 살다가 떠났다. 하지만 현대엔 '야경'은 그의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크스뮤지엄에 램브란트만을 위한 전시관이 세워질 정도로 그는 존경받는 화가가 되었고 '야경'은 그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램브란트를 향한 네덜란드인들의 애정이 느껴지는 공간에 앉아서 다미는 램브란트가 살았던 바로크 시대로 돌아가 꽤 긴 시간 동안 눈에 담고 가슴에 담았다.
"으아, 더 이상은 못 버텨."
장작 3시간을 돌았지만 아직도 많이 남은 작품들에 다미는 항복을 하고 박물관내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그림엽서를 구입하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