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하~하면서 사랑을 쏟아요
3월 4일은 세계비만의 날이라고 오늘 양재천에서 걷기 대회가 있었다. 비만협회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걷기 협회라는 것도 있다는 게 재밌다. 우연히 한겨레 신문을 보고 일요일아침부터 도곡역까지 가서 참여를 했다.
대표적인 비만캐릭터로 자이언트 펭수가 초청되어 왔다. 펭수를 따라온 펭클럽이라는 팬클럽이 오늘 행사참여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비만인으로서 ㅎㅎ, 오전에 자빠져 자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기 싫어서 그냥 참여했지만 이 여성들은 펭수를 따라 이곳에 와서 겸사겸사 걷기를 하는 거였다. 펭수 아니었으면 참가자의 절반은 없었을 것 같았고, 오전부터 어디에선가 온 노인들로 붐볐다. 펭수에 열광하는 이들은 펭수와 사진을 찍느라고 걷기는 뒷전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참여를 하긴 했다. 펭클럽에는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결혼도 출산도 쉽지 않아 진 우리 사회. 마침 옆에 줄 서 있다가 걷기 동무가 된 32세의 미혼여성은 "펭수가 그렇게 좋아요? 허허허"라는 내 말에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자 활력소라고 대답했다. 여러 가지 얘기를 물어봤다. 요즘 젊은이들은 왜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건지 물었더니, 혼자 살기에 여러 가지 분위기나 환경들이 충분한 세상이 되어 있어서라고 했다. 시댁이나 처갓집이니 신경 쓰면서 애 낳고 고생하면서 안 살아도, 자기 먹을거나 조금 벌면 그냥 혼자 살기 쉽게 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유지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궁리만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차피 결혼이니 가족이니 관심 없다면, 인형탈을 쓴 펭수라는 캐릭터에게 이렇게 마음 두고 사는 것도 사는 방법이겠다 싶었지만 아쉽기도 했다. 진짜 남녀가 만나서 마주 보고 부비부비 사랑하며 세월을 보내는 맛을 들이면 펭수를 따라다니는 즐거움보다 더 나을까 어떨까 계속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못 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펭수를 따라다니면서 활력을 느끼는 정도의 에너지를 가진 이들이 진짜 사람 대 사람이 만났을 때 뿜어내야 하는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견디어 내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불타오르며 살아내야 하는 현실 따위는 저 멀리 멀치감치 버려두고 싶은 사람들 같아 보여서 유리상자 같은 그녀들에게 함부로 뭔가를 권하는 말을 건넬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