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은 개구쟁이라 일을 저지르곤 했지만 일찍 철이 든 나는 엄마 속을 썩이는 일이 별로 없었다.
여러가지로 고달픈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적어도 나는 걸리적 거리지 않고 말 잘 듣는 자식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엄마가 좋아하겠지?'
'이런 일을 하면 엄마가 슬퍼할거야'
나는 무슨 일을 할까말까를 결정할 때 항상 머릿속에 엄마를 떠올렸다.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우리 남매가 싸울때면 엄마는 우리가 실망스럽다며 이런식의 절망적인 말을 자주 뇌까렸다.
난 이런 말을 할 때의 엄마가 불쌍했다.
내가 봐도 남편은 별로 안 좋은데 , 엄마의 자식은 나와 내동생인데
우리까지 엄마를 슬프게 해서는 안된다고 자세를 고치고 싸움을 멈추곤 했다.
엄마의 그 말은 잘 듣는 약이었다
동생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엄마의 좋은 자식이 되어주고자 애썼다.
착한 딸로서 아무런 말썽도 안 부리고 자라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불만이 있었다면 누나로서 동생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는 요구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았다는 점이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넌 누나잖니 !
누나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언제나 동생 돌보기를 우선으로 생각하라고 강요받았다
국민학교 3학년정도 되었을 때였다.
한번은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도, 노느라고 정신팔려서 집에 안 돌아오는 동생을 걱정하다가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며 그 책임을 나에게 물었다. 동생도 못 챙겼다고 꾸중을 하면서 ..
'난 너 없이는 살아도, 쟤 없이는 못 살아 이년아~!'
엄마는 이렇게 소리치며 화를 낸 적이 있다
그 말은 진짜 충격이었다. 난 그 말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세월이 한참 흘러 나이가 든 후에 난 그 말의 진의를 따졌지만,
엄마는 자신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정색을 하며 발뺌을 했다.
본인도 차마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는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며 기억도 안 나는 것 같았다
'설마 내가 그런 말을 했을라구? '
말은 곧 그 사람인데, 가치관이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오는 건데...
슬프게도 살던 엄마는 그 옆에서 밥 얻어먹고 살던 나를 자주 슬프게 만들면서 꾸역꾸역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