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동생이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은 '하는 게 꼭 지애비 닮았어' 였다. 엄마가 그 말을 할 때 가장 화가 났고, 심지어 우리 남매끼리 싸울 때도 마지막에 서로에게 날리는 비수같은 최고의 욕은 '너 아빠 닮았어'였다.
"근데 니 아버지는 계집질이랑 노름질은 하지 않았어" 라고 엄마는 가끔 아빠를 추켜세우듯이 말하기도 했지만 , 근본적으로 무능력하고 때리는 남편으로 인해 엄청 고단한 인생을 살았다.
어린시절 내 눈에 비친 아빠는 돈도 못 벌고, 엄마랑 맨날 때리고 싸우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하지 못했던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나와 동생은 아빠를 닮기 싫었다.
우리는 아빠를 닮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아빠가 피는 담배도 안 배웠고, 술도 잘 안 마시는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아빠와 달리 가방끈도 길고 직업도 있다.
그런데 나이들어 생각해 보니 남동생과 달리 나는 아빠를 너무 닮았다.아빠처럼 노래 잘하고, 감기걸리면 설사부터 하는 체질도 아빠 닮았다. 폐렴으로 돌아가신 아빠를 닮았는지 기관지가 약해서 천식도 폐렴도 걸렸었다. 돈을 꾸거나 빌려주는 일은 별로 없지만 남의 돈 빌리면 반드시 갚고, 미안해서 갚을 때까지 전전긍긍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다.
아내와 치고박고 싸우고도 죄책감에 힘들어했던 모습을 여러번 봤다. 아빠 닮았다고 항상 자식에게 비난하듯 말하던 엄마와 달리 아빠는 우리더러 '엄마 닮았다'며 비난을 한 적이 없다. 엄마에게도 과장되고 허풍스럽고 감정적인 성격 단점이 많은데 아빠는 한 번도 우리 앞에서 엄마를 비난한 적이 없다.
그런면에서 아빠는 순한 약자였다. 비난의 찬스를 이용하여 엄마보다 우위를 차지하려는 영리함이 없었다.
난 가끔 내 남편에게서 내 아빠의 단점과 유사한 모습도 발견하고, 내 아들에게서 내 남편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들은 장기와 바둑을 엄청 잘 두는 것도 지애비를 닮았다. 지애비의 단점도 장점도 다 닮은 아들이다. 유전자이외의 것으로부터는 물려받는 게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오늘도 학교도 안 가는 날이라고 밤새 온라인 바둑두다가 1시까지 자빠져 자는 아들이 실망스럽고 내 욕심같지 않아서 '넌 하는 짓이 니 아빠 닮았냐' 라고 투덜거렸다.
타인에게 말로 비수를 날리던 엄마처럼 나도 내 아들에게 지껄이고 있었다. 자식이 양쪽 부모를 닮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그걸 욕으로 써 먹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난 어느새 애비도 애미도 다 닮은 채로 나이를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