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겨울
"천백고지에 눈썰매 타러 가실래요?"
아들 친구 S양의 아버지가 우리 가족에게 눈썰매를 타러 가자고 제안했다.
사실 S와 아들은 용인 수지에 있는 같은 유치원에 다닌 사이였다. S가 제주도로 이사 간 후 아들이 S를 너무 보고 싶어 해서(그 친구가 보고 싶다는 말을 1년 넘게 했다...) 유치원에 문의해 S네의 제주가게 인스타를 알게 됐다. 이후 메시지를 보내 연락을 주고받고, 한 번 제주도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얼굴을 본 후 우리도 제주도로 1년 살기를 오게 된 것이었다.
S네 아버지는 브런치카페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S와 우리 아들의 추억 만들기를 위해 항상 즐거운 제안을 많이 해주셨다. 우리는 S네 가족이라는 좋은 이웃을 만나 1년을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천백고지는 서귀포 중문과 제주시 오라동을 잇는 지방도로인 1100 도로에서 가장 높은 곳을 부르는 말이다. 한라산 중턱의 해발 1100m 고지를 지나간다. 겨울이면 1100 고지 곳곳에 차가 세워져 있는데 다들 한적한 비탈길에서 썰매를 타기 위해서다. 제주맘카페에서도 눈이 한창 많이 오는 때가 되면 '오늘 천백고지에서 눈썰매 탈 수 있는지'를 묻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가끔 통제되기도 해서다. 그래서 도민들은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나 한라산 실시간 CCTV 등을 통해 현재 상황이 어떤지 확인한 후 썰매를 타러 가는 편이다. 또 어떤 시설이 갖춰진 것이 아니라 각자 집에서 썰매를 가지고 와서 타기 때문에 자유로운 반면 스스로 안전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갔던 2023년 12월 27일에도 차가 막힐 정도로 많은 차들이 도로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1100 고지까지는 가지 않고 근처에서 눈썰매를 타기로 했다. 아들은 발목까지 올라오는 방수부츠를 신겼고, 나는 방수 부츠가 없어서 발목 정도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왔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푹푹 빠지는, 드넓은 눈밭을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마치 전세를 낸 것 같은 눈썰매장이었다. 당시 6살이었던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을 만한 적당한 높이의 경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S양과 우리 아들, 또 S양의 부모님과 함께 비탈진 곳에서 눈썰매를 탔다. (우리 남편은 이날 알바가 있어서 뒤늦게 합류했다) 아이들만큼이나 어른들도 즐거웠다. 아이들은 자기들만큼 큰 눈사람도 만들어 인증샷을 찍었다. 평소 일하시느라 바빠서 여유를 즐기지 못하셨을 S양의 부모님을 위해 커플 사진도 찍어드렸다.
그 겨울 천백고지 썰매를 이때 한 번만 가서 탄 것이 아직도 아쉽다. 조금 더 격하게 즐겨봤어도 좋았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 글을 읽고 천백고지에 가는 분이 있다면 썰매뿐만 아니라 가기 전 아이들의 꼭 방수부츠와 여벌옷, 여벌양말을 챙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