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생활비 얼마 남아 있어?"
우리 부부가 제주에서 아마 가장 많이 쓴 말은 슬프게도 이 말이 아닐까. 애초에 제주도 월세는 연세로 한 번에 내버리고, 하준 유치원도 제주에선 병설유치원에 다니니 별다르게 돈이 들 것이 없을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 내 퇴직금 중에서 연세와 보증금을 내고 남은 1000만 원을 아껴서 살면 1년 가까이 살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1년은 무슨, 반년도커녕, 1000만 원은 3개월도 안돼 사라졌다.
잔고의 돈이 줄어들수록 초조해져만 갔다. 우리 나름 건강을 회복하고, '힐링'하기 위해 제주 온 건데 돈 때문에 걱정이 시작됐다. 결국 하준 아빠가 먼저 알바를 시작했다. 시급 1만 원에 수요일 오전에 3시간 펫마트에서 일하는 알바였다. 수요일은 펫마트에 물건이 들어오는 날로, 남편은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고 그 물건을 매장에 디스플레이도 했다. 마지막엔 청소로 마무리. 그렇게 3만 원을 벌었지만 그 주변 카페에서 내가 기다리느라 커피를 사고, 알바를 끝난 남편과 점심을 사 먹고 나면 3만 원은 금세 사라졌다. 허무했다. 같은 기간 나도 알바를 시작했다. 예전에 첫 집을 장만한 후배 기자가 이사비라도 벌기 위해 부업으로 블로그 글 작성 알바를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 후배에게 물어서 나도 시작했다. 내 블로그도 필요 없고, 원고만 작성해서 중개업체에 보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고료가 너무 적었다. 2000자에 6000원이었는데, 그마저도 세금을 떼면 5800원대였다.
신랑은 수요일 오전에 하는 알바를 두 달 정도 하다가 결국 집 근처 편의점 알바를 구했다. 저녁에 하는 알바였다. 한 달 하면 100만 원 가까이 돼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 일도 석 달 정도 하다가 관둘 수밖에 없었는데, 신랑의 이석증이 심해져서 어지럽다며 자꾸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나서였다. 심신을 쉬려고 제주 왔는데 이석증이 심해져서 신랑보고 그냥 관두라고 했다.
남편이 낮에 일하면 괜찮을 것 같다며, 낮일을 찾아보다가 초등학생 수학 과외도 방학 한 달 특강으로 하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이었는데, 가족분들이 모두 따뜻한 분이었다고 했다. 그 집의 경우, 처음에 제주 한 달 살기로 내려왔다가, 한 달이 몇 달이 되었고, 이어 결국 아예 내려와 정착하게 됐다고 했다.
그 이후 남편은 애견카페에 한 세 번 정도 일한 것을 끝으로 제주에서의 알바를 마무리했다. 애견카페 일은 괜찮아 보였지만, 사실상 장사가 안돼 잘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편도 걱정을 했었다. 남편은 정직원인 매니저와 함께 일했는데 남편이 일한 날 하루 매출이 3만 원 정도밖에 안 나오는데 사장이 사람을 두 사람이나 쓰는 것이니 괜찮으려나, 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세 번 일하고 관둘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틈틈이 큰돈이 안 됐지만 그래도 노느니 블로그 작성 알바 일을 했고, 또 하루 식당 알바를 하기도 했었다. 하필 손님이 많이 몰리는 날 알바를 해서인지 그날 알바 이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병원을 가니 후두염이라고 했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해야 하는데, 또 주문도 받고 결제도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하루 일하고 관둘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도 "최근 몇 달 새 가장 손님이 많던 날 하필 첫 근무를 해서 목이 그렇게 된 것 같다"며 미안해하셨다.
우리 둘 다 살면서 이렇다 할 알바를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둘 다 40살이 넘어서 제주에서 다양한 알바 경험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제주는 육지에서 무엇을 하다왔든 다들 '계급장 떼고 붙는' 생활의 장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