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제주 와서 가장 좋아했던 것이 올레길 걷기다. 사실 제주 와서도 육아가 중심인 일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아이 유치원 갈 준비를 시켜서 차로 20분 거리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또 데리고 온다. 이어 학원에 보내고 다시 집에 데리고 와서 밥을 해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하는 일의 반복.
그래서 우리가 있는 이곳이 제주도인지, 우리가 살던 용인 수지인지 전혀 모를 것 같은 일상을 살다가 둘이서 제주의 절경을 감상하며 걷는 올레길을 걸을 땐 '와! 우리 정말 제주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좋아했다. 제주에 살지만 올레길을 걸어야만 제주에 진짜 사는 기분.
둘이 손을 잡고 걷고, 경치가 좋은 곳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좋았다. 다시 연애 때로 되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아이 하원시간까지 맞춰서 다시 가려면 시간 여유가 없어서 둘이 흔한 카페 한번 맘 편히 방문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아침마다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싸서 간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바닷가에 놓인 돌 테이블에 도시락을 놓고 돌 의자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먹곤 했다. '이게 정말 최고의 바다뷰지!' 하면서.
2023년 가을에 시작한 올레길 걷기는 2024년 8월 16일에 12코스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겨울엔 패딩이 땀에 흠뻑 젖어가며 걸었는데, 여름엔 진정으로 더위와의 전쟁이었다. 가을과 봄이 제일 걷기 좋았는데, 그 두 계절은 언제나 그렇듯이 너무 짧았다.
마지막 올레길을 걷고 나서 8월 23일에는 하준이를 데리고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 가서 완주증서를 받았다. 받는데 감개무량했다. 항상 코스 마지막에는 둘 다 발이 아픈 경우가 많았고, 땀에 절어 있어서 새 티셔츠를 가져갔다가 갈아입고 차를 타고 돌아왔다. 고생길이었지만 뿌듯했다. 과정은 행복했고.
우리 둘 다 가장 좋았던 코스로는 추자도 코스를 꼽는다. 절경이 이 세상 절경이 아니다. 가보면 왜 좋은지 알게 될 것이다. 숙소는 민박집 밖에 없는데 민박집에서 저녁과 아침을 대부분 준다. 조용한 바닷가마을에서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는 것도 참 평화롭고 안온한 기억이다. 추자도를 제외하고는 4코스나 5코스, 7코스 등 산이 없이, 해안가를 걷는 코스가 좋았다.
올레길 중에서는 다크투어리즘 코스도 있었는데, 아픈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어 유익했다. 올레길 10코스 일부인 송악산에서는 태평양 전쟁 말에 일본이 군사시설로 만든 진지동굴을 볼 수 있다. 미군 항공기 공급에 대비해 만든 고사포 진지도 남겨져 있다. 섯알오름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무고한 도민 수백 명을 잡아다가 학살시킨 곳(예비검속자 학살터)도 있고, 일본군의 비행기 관제탑까지 남아 있다. 아팠던 과거의 현장을 없애버리지 않고, 역사적 교훈을 주기 위해 남겨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딱히 싫은 코스는 없지만 신랑은 싫은 코스가 있긴 있다. 바로 11코스로, 걷는 도중에 너무 많은 공동묘지가 나와서 싫단다.
우리는 처음에 일 년 살기를 하면서 올레길을 두 번 완주할 계획을 세웠었지만, 육아를 해야 하는 부모로서 한 번만 완주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고, 동시에 또 값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년 살이를 한다면 올레길 완주 꼭 한번 해보시길. 다이어트는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