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미술관 투어를 하기에도 참 좋은 곳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조천읍 와산리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인 함덕쪽을 자주 갔었는데, 그곳에서 '걸어가는 늑대들'이라는 갤러리를 발견했다. 2008년생 청소년 작가인 전이수 작가 작품이 있는 곳이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전 작가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 보다 더 어린아이였을 때였는데 감성이 넘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인상 깊었다. '걸어가는 늑대들'에서도 따뜻한 울림을 주는 그림과 글이 많았다. 아들 하준이도 동심 가득한 글과 그림에 관심을 가졌다. 다만, 생각보다 글밥이 많아 글을 잘 읽을 수 있는 초등학생 때 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립미술관도 1년 살기 하는 도민이라면 할인받을 수 있어서 더 가기 좋은 곳이다. 우리는 마음먹고도 갔지만, 근처를 갔다가도 잠시 미술관에 들러서 감성 충전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도립미술관이 지난 한 해 동안 수집한 작품들의 기획전시도 볼만했다. 1층 한켠에서는 그림을 동영상화 해서 보여주는 미디어전시도 있고, 또 어린이들이 편하게 색칠을 할 수 있게 한 공간도 있었다. 이밖에도 ‘그림책 오름’이라는 어린이 놀이방도 마련돼 있다. 미리 예약해야 하며, 2시간 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그림책이 많아서 하준이와 함께 실컷 책을 보고 올 수 있었다.
김창열미술관도 정말 인상 깊었던 곳이다. 아이 없이 부부만 갔었기 때문에 도슨트를 들을 수 있었는데 단순히 ‘물방울 작가’라고만 알았던 김창열 작가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다. 파리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그렸던 캔버스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다가 아침에 물방울이 맺힌 것을 보고 착안해 물방울 시리즈가 시작됐다고 한다. 천자문 위에 물방울이 있는 그림이 많았는데 작품 바탕지에 있는 천자문도 직접 다 쓴 것이라고 한다. 물방울 그림인 ‘회귀’ 시리즈가 유명한데 그래서 미술관 건물 자체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자인 돌아올 ‘회(回)’ 모양이라고 한다. 그림만 그린줄 알았는데 물방울 조각상과 물방울이 떨어지는 착시현상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도 있었다.
서귀포에 있는 기당미술관은 우연히 가게 된 곳이었지만 정말 괜찮았다. 기당 미술관은 서귀포 출신인 재일교포 사업가 기당 강구범 선생에 의해 설립된 곳이다. 티켓 가격도 부담 없는 1000원. 우리는 상설전시인 제주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한 변시지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변 화백의 경우, 기당미술관의 관장으로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붓터치로 완성된 바람 부는 제주도의 풍경이 인상 깊었다.
아트라운지도 있었는데 이곳은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과 놀이시설, 색칠이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이뤄져 있었다. 한쪽면이 통창으로 돼 있어 아름다운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남편이 하준이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이 창가에서 찍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미술관을 갈 때마다 더 한가롭고 고요한 기분이 든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느낌. 그래서 그런지 작품에도 더 집중을 하게 되는 듯하다. (물론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다.) 제주 일년살이를 한다면 꼭 미술관 투어를 만끽하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