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는 일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야 혼자 일하고 회식할 일은 없으니 다행이지만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도 학교라는 조직이 다른 조직보다는 회식의 횟수가 덜하다지만, 난 그 덜한 회식에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다.
일단 회식으로 인해 내 생활 루틴이 무너지는 게 싫었다. 합리적이진 않아도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루틴이 있다. 몇 시에 퇴근하고 몇 시에 저녁을 먹고 몇 시에 씻고 몇 시에 자야 하는 루틴 말이다. 회식이 있는 순간 이 모든 루틴이 다 어그러진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고 잠자는 시간이 늦춰지면 그다음 날 그게 그리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돌아오는 것이다.
주로 회식을 주도하는 입장이 아닌 준비하는 입장에서, 주도하는 사람들은 왜 그리 회식을 좋아하는지 몇 번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조금씩 이유는 달랐지만 공통적이었던 이유 하나는 친목 도모였다. 그것도 나는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던 게 친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회식을 하면 친해지게 되는가였다. 술을 마시니까 분위기는 좋아 보여도 다음 날에는 다시 어색해지던데. 어차피 친해질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하던데 굳이 회식 자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라 친목을 강요당하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회식에 진절머리가 나서 마지막에 근무한 학교에서는 웬만한 회식자리는 대놓고 피해 다녔다. 술 못 마십니다 또는 집에 일이 있어서요 라는 말이 항상 내 입에 붙어 다녔고 정시 퇴근 시간만 되면 일 들고 학교를 나와버렸다. 그때는 이렇게 일하다가 잘리면 다른 학교 가면 돼 라는 마음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 마음으로 일한 게 6년, 내 학교 경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학교든 회사든 본질은 일하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하러 왔으면 같이 일을 해야지, 친목도모와 같은 부차적인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살다 보니 학교에서 난 술 못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 으레껏 참석을 권유하던 사람들도 두세 번 정도 거절하니 다음부턴 물어보지도 않는 눈치였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니 내 일 효율은 더욱 올라서 오히려 평가가 더 좋아지게 되었다. 술이 마시고 싶은 날은 집에서 혼자 마시는 걸로도 충분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공적인 일에 집중하고, 사적인 영역은 서로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구적인 마인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동양에도 선공후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