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는 사랑이야
작년 말에 신랑이 포항으로 출장을 간 사이에 열이 너무 높아졌다. 밤에는 37.7도에서 38도에 가까워 지길래 일단 해열제를 먹고 잤다. 문제는 아침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열은 38.7도가 나왔고, 움직일 수 없어서 거실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열이 계속 나니 열기때문에 눈물이 고여 앞도 흐려졌다. 코로나 사태로 진료가 가능한지 알 수 없었기에 차분하게 119에 전화했다.
나 : "지금 열이 38.7도까지 나왔는데 어디에서 진료를 볼 수 있나요?"
119상담 직원분 : "일단 선별진료소 가서 코로나 검사하셔야 해요."
나 : "제가 차가 없는데 택시 타도 되나요?"
119상담 직원분 : "아니요. 그러면 저희가 구급차 보내드릴게요. 잠시 기다리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내가 복용 중인 약과 옷 한 벌, 속옷 한 벌, 보온병, 마스크 등을 담았다. 입원해야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자연스럽게 당장 필요한 것들만 챙기기 시작했다. 평소 들고 다니는 에코백에 들어갈 정도의 적은 짐을 챙기고 빠진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몇 분이 지나자 전화가 왔다.
119 출동대원 : "119 출동대원인데요. 지금 열이 몇 도 나오나요?"
나 : "38.7도까지 나와요. 지금 다시 쟀는데 또 38.7도네요."
119 출동대원 : "저희 다 왔는데 1층까지 내려오실 수 있나요?"
나 : "네, 내려갈게요."
굉장히 차분하게 119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혼자 짐을 싸서 119 출동대원분들의 도움으로 차에 실려갔다. 그때는 고열로 눈물이 흘러넘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119에 탑승하자마자 바이탈과 열을 체크했다. 39도가 넘었다.
119 출동대원 : "환자분, 지금 선택지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OO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하고 격리실 들어가는 거고요. 또 하나는 XX병원 가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하고 진료하고 약 받아서 다시 집에 가는거에요."
나 : "2번으로 할게요."
119 출동대원 : "네 그럼 XX병원 선별진료소로 가겠습니다."
삐용삐용 소리가 굉장히 먼 곳에서 들리는 듯했다. 선별진료소에 도착하니 119 출동대원분들이 이야기를 다 해주셨다. 나는 평소 가지고 다니던 에코백에 꾹꾹 눌러담은 짐을 꼬옥 안고 기다렸다. 열을 계속 재봐도 39도에서 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코로나 검사, X-ray 촬영, 진료를 끝냈더니 내과 과장님이 내려오셨다.
내과 과장님 : "열이 너무 높아서 집에 가셔도 어차피 다시 와야 될 거에요. 입원하시죠."
나 : "네."
입원서류를 보호자가 적어줘야 한다는데 나는 와줄 사람이 없었다. 신랑은 포항 출장 중이었고, 친정 부모님도 동생의 일로 타지에 가셨기에 혼자였다.
병원직원분 : "보호자 언제 오실 수 있나요?"
나 : "못 올 것 같은데요?"
결국 혼자 입원서류를 쓰고, 특실에 입원했다. 코로나 검사를 했기 때문에 1인실에 입원을 해야 하는데, 남은 병실이 없었다. 2만 원 더 비싼 특실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비타민과 항생제, 해열제, 밥 대신인 것까지 총 4개의 링겔을 달고 있었다. 그러다가 밥을 좀 먹어보라는 권유에 처음 죽이 나온 날이었다. 밥을 안먹어봐서 몇 시인지 몰랐는데, 4시 50분에 배식하는 분이 죽이 담긴 식판을 가져다 주셨다. 감사 인사를 하고 먹을 준비를 하는데, 나가다가 다시 들어오셔서는 나에게 물으셨다.
"임산부에요?"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나니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듣는 이 질문이 예전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게 해서 웃었다. 신랑에게 전화해서 얘기해주었더니 또 웃었다.
식판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 올 때 마다 나를 유심히 보셨지만.. 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신랑은 입원한지 2일째 저녁에 만났다. 대체 며칠만에 만나는 건지.. 내가 가장 아픈 순간에 항상 신랑이 없는 건 머피의 법칙 같은 느낌이다. 이때 혼자 119에 전화를 하고 입원까지 스스로 했던 경험은 아무도 없을 때 심하게 아프다면 119를 불러서 병원에 가면 되고, 셀프입원을 하면 된다는 것을 알려준 것 같다. 뭐라도 배우게 되고 안심이 되는 방법을 찾았으니 다행이겠지.
해열제 링겔을 달고 있으면서도 열은 39도를 맴돌아서 링겔의 갯수를 줄어들지 않았고, 주사를 넣을 때 마다 붓는 혈관 때문에 매일 새로운 혈관자리를 찾기 위해 간호사님들과 긴 시간을 보냈다. 약은 조금씩 바꾸고 추가 되었다.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약을 먹기 위해서 최소한 밥 한그릇은 비우자라는 생각으로 반찬 하나에 밥은 한숟가락 가득 떠서 꾸역꾸역 먹으며 버텨냈다. 간호사 분들이 최대한 잘 먹어야 혈관이 나온다고 하셔서 더 열심히 먹은 것 같다.
대신 의사선생님이 고열이 있으니 아이스크림이나 차가운 음료는 오히려 먹어도 좋다고 하셔서 바로 1층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그나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차가운 것들을 사들고 냉장고에 쟁여 놓았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건 결국 차가운 물이었다. 물 먹는 하마라는 별명이 어디 가지 않나보다.
검사를 하면서 다른 수치들이 정상이 되었음에도 잡히지 않는 고열로 나는 결국 10일을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그것도 의사선생님이 더 어떻게 해줄 수 없어서 퇴원하라고 하셨다.
이때는 에피소드 보다 혼자 겪었던 과정이 너무 뇌리에 박혀서 한 번은 꼭 적고 싶었다. 나에게는 처음 겪었던 일이라 뭔가 특별한 일이 된 것 같다. 아직도 신랑이랑 가끔 이야기를 하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 TMI **
1. 119 출동대원 두 분을 만났을 때 시야가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방호복을 입은 모습이 우주인을 연상하게 했다. 실제로 방호복을 본 적이 없어 이렇게까지 중무장 한다는 것을 몰랐고,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119 차를 타본 것도 처음이었다. 입원이 결정 될 때까지 기다려주셨던 두 분께 너무 감사하다. 119는 사랑이다.
2. 몸무게나 살이 많은지 적은지와 별개로 혈관은 잘 먹어야 잘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혈관이 아예 잡히지 않는 상태로 입원을 했기에 무조건 잘 먹어야 했고, 움직이는 게 더 위험하다고 해서 VIP입원실에서 수시로 잠들었다. 진료, 검사, 간호사실, 편의점 외에는 나가지 않았다.
3. 나는 39도 넘는 열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도 침착하고 이성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급하게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혼자 아프더라도 차분히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내가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느낌.
4. 꾸준히 검사를 하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면서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여전히 찾지 못했다. 다행히 새로 만난 담당 내과 선생님은 친절하고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주고 싶어하셔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