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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요정 Sep 07. 2021

나.. 생각보다 건강한가?

백신 1차 접종

부실하게 태어나서 아가아가할 때부터 대학병원을 집만큼 드나들었던 나.

여전히 규모가 있는 병원에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건강상태랑 복용 중인 약의 경과를 살펴보고 추가 검사를 하거나 약을 조절한다.

그리고 비정기적으로 정형외과나 한의원(추나요법 받으러)을 방문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언제나 그랬듯이 아팠다. 몸살이 심하게 나서 미열과 근육통, 두통, 체력소진으로 2주 정도 아프고 있는 중이었다.

백신 예약을 해놓은 날이 다가오는데 처음에는 걱정을 하다가 조금 지나고 나니 '원래도 아픈데 아파봤자 병원에 있을 때보다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카카오톡~'

이건 내가 잔여백신 알림을 위해서 따로 설정해놓은 알림음이다.

모더나 잔여백신이 보였다.

습관처럼(?) 무언가 홀린듯이 눌렀다.

예약이 되었다.

매번 도전해도 1번을 성공 못한 잔여백신 예약이.. 갑자기.. 되버렸다..

'응? 왜 되는거지???' 내가 더 놀랐다.


신랑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택시타고 다녀오겠다고 했다. 신랑은 관리자 회의가 있어서 빨리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119도 혼자 타고 가서 입원했던 나에게 택시타고 접종 쯤은 뭐..)

병원에서 5시반 전까지 올 수 있는지, 신분증은 꼭 지참해서 오라고 연락이 왔다.


택시 아저씨가 병원 이름이 같은 곳을 헷갈려서 한블럭 먼저 내려주셨다.

하필 비가 왔다.

나는 우산이 없다.

비 맞으며 한 블럭을 걷는 나.

몸살인데 비 맞으며 백신 접종하러 가는 나.

뭔가 앞뒤가 안맞는 상황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접종을 기다리거나 접종 후 스탑워치를 들고 경과를 보고 있었다.

나도 접종 서류를 쓰고 접수하고, 모더나라고 쓰인 빨간 종이를 받아들고 기다렸다.

의사쌤과 잠시 면담을 하고 주사를 맞았다.

문지르거나 때리는 과정없이 알코올솜으로 슥슥 닦고 살을 탁 잡아서 똭!

이건 조금 따가웠다.


나도 15분에 맞춰져 있는 스탑워치를 하나 들고 기댈 수 있는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비가 오는 날에 숨이 더 차서 마스크를 오래 쓰고 있는게 힘들다.

땀은 비오듯하고 숨은 차고 사람은 많았다.

그리고 나는 15분이 손에 들려있었다.


무사히 15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갔다.

택시랑 뭔가 안맞는 날인지.. 입구를 헷갈려서 다른 쪽에 내려주셨다.

또 비맞고 걸어갔다.

'아.. 비.. 진짜 싫다..'


그 사이에 다른 이야기로 신랑과 통화했던 부모님이 내가 백신 맞은 소식을 듣고 전화하셨다.

아빠엄마가 "백신 맞았다며? 예약일 남았잖아?? 괜찮아??"

내가 답할 틈 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라 이렇게 걱정을 많이 시키는 딸이 되었다.

예약일이랑 며칠 차이도 없고 원래 아프니까 괜찮을거라며 최대한 웃고 걱정없는 것처럼 말했다.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저녁에 신랑이 와서 내일은 아프면 밥을 잘 못 먹을 수도 있다면서 든든하게 먹으라고 했다.

고추장불고기를 배달 시켜 먹었다.

밥도 한그릇 다 먹었다.

당이 떨어져서 마카롱 2개랑 고구마라떼도 한 잔 시켜먹었다.


밤이 되어갈수록 팔이 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기 전에 타이레놀을 미리 한 알 먹었다.

새벽 4시반에 깼을 때는 주사 맞은 부분만 근육통이 심한거처럼 느껴졌다.

전날 신랑이 말해준거처럼 타이레놀을 한 알 더 먹고 나머지 잠을 잤다.

왼팔이 아프니 오른쪽으로만 자야해서 계속 뒤척이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아침에 8시반쯤 일어났을 때 신랑이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랑의 첫 마디 역시 "괜찮아??" 였다.

"응, 근데 주사 맞은데가 근육통처럼 아파."

신랑은 웃으며 그건 뭘 맞아도 그런거라며 다행이라고 했다.


밥을 먹고 거실에서 같이 TV를 보다가 신랑이 말했다.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데? 그냥 출근할 걸 그랬나?" 라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 증상이 없는 내 자신이 조금 신기하기는 했다.

참 특이한게 유행하는 전염성있는 질병은 걸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전염성이 없는 것만 골라서 아팠다.

남들 다 아플 때는 혼자 멀쩡했다.

이번에도 '나는 특이하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안아파서 다행이다~ 아빠엄마한테 말해줘야지!'

주사 맞은지 24시간 될 때까지는 지켜봐야 된다고 했는데 24시간 넘었으니, 집에서 아픈 손가락 걱정하실 부모님께 얼른 전화드려서 괜찮다고 해야겠다.

딸내미가 생각보다 이런 쪽으로는 강하다면서 너스레 떨며 말해야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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