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도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봄이 왔다. 코끝에 스치는 일상의 향은
온도감이 올라가며 따뜻하고 풀과 흙,
일상의 내음이 점차 선명해진 요즘이다.
이처럼 커피 향도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온전히 커피를 한잔을 다 마신 게 언제일까?
정말 매일, 매주마다 내게 오는 커피들은 많았고
하루에 적게는 15개의 컵을 보고 많게는
오전 오후 가리지 않고 30컵까지도 갔었다.
그렇게 매일 마시며 기록하고 평가하고
늘 논의와 결정을 반복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날, 그렇게 QC를 마치고 정리를 하기 전,
내린 지 40분이 지난 커피를 봤다.
조금은 휘발되어 향은 날아가고 컵에 묻어난 상태,
나는 그 컵을 들고 조용히 마셨다.
농도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다시한번 그 컵에서 가능성을 봤다.
결국 하나의 컵에는 그런 가능성이 있었고
결정을 내린 부분에 안심하며 만족을 했었다.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논의를 거친 다음 결정을 위해
모두의 마지막 시선은 내게 오고 있는 요즘이다.
그 시선을 받아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서 오는 건
책임을 지는 일, 고요하고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그런 삶을 살아가며 마주할 일이지만,
그 순간에 마주한 컵에 농도는 언제나 남아있었다.
마셨던 커피에 대한 감각이 기억으로 이어지며,
언제나 어떤 커피에 대한 인상을 기억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수많은 지나가는 커피일 수 있지만,
내 삶에서 그런 일들은 넘길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내가 마주하는 순간들에 충실하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적어도 기억을 한다는 거니까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