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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스틸러 Dec 20. 2015

그리운 잔소리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인생은 말이다... "
"회사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다"
"내가 왕년엔..."
"인생은.. 아까 말했었나? 그래도 또 들어둬, 피가 돼도 살이 된다. 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야. 틀린 말 하나 없단다."

오늘도 아버지의 입은 쉴 새 없다. 분명 내가 없을 때에는 묵언수행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한참을 듣다 보면 수많은 정보를 주어 담는 내 귀 보다 힘겹게 흔들리는 아버지의 성대가 걱정이 된다.
너무 걱정된 나머지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조용히 귤을 까서 아버지의 입에 넣어 드리는 것이다.

서른이라는 훈장을 가지고 일 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나지만 세월을 머금은 축 처진 아버지의 눈에는 작은 잠자리를 잡아서 손에 쥐어주던 그 시절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것이 틀림없다.
자주 보지 못하는 서른 살 아이에게 자신이 지나온 험난한 길에 대해 아낌없이 알려주고 싶으신 것이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 끝에 아버지의 진심이 보인다. 흘려보냈던 아버지의 따뜻한 이야기 조각들에 다시 주의를 기울여 보지만 그 다짐 또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준비되지 않은 나에겐 따뜻한 조언들이 모여 잔소리가 되어 버렸다. 인내심은 두 손 두발을 들었고 좋은 아들이 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끝을 알 수 없는 연설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제야 겨우 목이 풀린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아쉬움과 섭섭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피어오르는 동정심을 애써 외면하고 찾은 곳은 엄마의 품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엄마의 무릎에 큰 머리를 구겨 넣는다. 가볍지 않을 무게였을 텐데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세월이 지나도 이것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곳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어른 아이가 되었다.
"원하지 않는 도움을 주는 건 상대방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냐?"
"우리 서방님이 우리 아들을 힘들게 했나 보구나!"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지만 보고 듣지 않아도 정확히 예측하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어느새 내가 힘들었노라 어리광을 피우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런 나를 계속 쓰다듬으며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빠가 엄청 말이 많아졌지? 나이가 들어서 그래. 조금씩 조금씩 상대방이 싫어하지 않을 정도로 말해줘야 하는데 성격이 급하셔서 그래."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어느 누구도 섭섭하지 않을 적절한 대답이었다.
끓어오르던 마음이 평온을 찾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엄마의 말에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나이가 들면 다 말해주고 싶어 져~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모르니까~ 소중한 사람한테 말해줄 수 있을 때 아낌없이 다 말해 주고 싶어 지는 거야. 너희 아빠도 너무나 소중한 아들한테 다 말해주고 싶어서 그럴 거야."
'언제 떠날지 모른다...'
항상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분이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 미루고 미뤄 뒀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저 짧은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이다. 한참 동안 나를 흔들어 놓은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꽤 긴 시간이 흐르고 방에 홀로 누워있던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오랜 시간 산책로를 함께 걷고 또 걸었다.
먼 훗날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하게 될 잔소리와 함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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