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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스틸러 Oct 29. 2015

깜빡이는 초심

전구

'깜빡깜빡’


읽고 있던 책을 멈추고 천장을 바라본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시침 이를 뚝 때고 있는 전구와 눈이 마주친다.


'잘못 봤나?'

'오른쪽 눈을 깜빡'

'왼쪽 눈을 깜빡’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다시 책을 펼쳐 든다.


다시 '깜빡깜빡’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침 이를 뚝 떼고 있던 전구는 마지막 할 말이라도 있는 듯 헐떡이고 있었다.
6년 전 많은 꿈을 안고 이 방에 처음 발을 디디며 갈아 끼운 전구였다.
새 전구에서 나온 빛은 어두운 나의 방을 환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것은 다가올 나의 미래와 같이 빛났다.


지금 그 전구가 깜빡 인다.

오랫동안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먼지에 둘러 싸여 있고 이제는 작은 어둠도 밝힐 힘조차 없어 보인다.

그렇게 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방안에서 깊은 생각의 늪에 빠져든다.

초침이 분침을 여러 번 만난 이후에야 생각의 늪을 빠져나온다.
자연스레 옷을 챙겨 어두운 방안을 벗어나 철물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래가는 전구로 주세요. 다시는 꺼지지 않게요."


6년간 나를 밝혀준 전구를 내 품에 안는다. 아직 온기를 머금고 있다.
다 써버린 보잘것없는 유리관이었지만 뽀얀 먼지를 조심스레 닦아 방구석에 내려놓는다.
새로 사 온 전구는 금세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어둠을 뚫고 나온 그 빛은 6년 전 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다.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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