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사자] 사진 속에 담긴 사랑의 실체

7화, 사진 속에 담긴 사랑의 실체.

by 심스틸러

[(여자) 이별 사자] : 혼자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별 사자] : 아.. 아니에요. 그냥 이것저것 떠올라서 미안해요.


[이별 사자] : 그나저나 저 아이들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저 때가 제일 좋을 때인걸 저 아이들도 아려나? 하하하하!


[신입 이별 사자] :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선배님. 참 아름다운 한쌍이네요.


괜스레 평상시보다 더욱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무엇인가 감추기 위한 나의 어색한 웃음이 상대방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킬 거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대 이별 사자의 의심이 더욱 깊어지려 할 때, 마침 승우와 세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입 이별 사자] : 어! 선배님 저 아이들 이제 이동하려나 본데요?


[(여자) 이별 사자] : 그렇네요. 그나저나 첫 데이트 장소 어딘지 알고 있어요?


[이별 사자] : (아직 깊은 사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한 멍한 표정으로) 글쎄요. 아직.


[(여자) 이별 사자] : 아직? 첫 데이트 장소도 모른단 말이에요? 승우가 검색을 해봤다거나 예약을 했다면 손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고민의 흔적이 전혀 없었나 보네요.


[이별 사자] :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분명 놓쳤을 거예요. 승우가 뭔가 준비했겠죠.


[(여자) 이별 사자] : 그러길 바라요. 아무튼 오늘 승우의 센스를 확실히 볼 수 있겠네요. 누구나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지루한 데이트는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함께하는 첫 데이트이지만 당연히 승우가 세희를 위해 준비하고 평가받는 날인 것처럼 이야기하였다. 썩 마음에 드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행위에 있어 서로를 향하는 마음의 크기가 언제나 같을 수 없기에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 더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에 형태가 있다면 흐르는 물질과도 같은 모습일 것이다. 사랑은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서로가 다른 높이를 가지고 있다면 그 차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자리에 일어나 한참을 걸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승우의 표정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말하고 있었다. 번잡하게 늘어진 간판들을 지나자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이 나왔다. 흔히 인간들이 말하는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명소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다.


[(여자) 이별 사자] : 첫 데이트에 이런 골목길은 처음이네요. 흔하진 않긴 하는데.... 동시에 엄청나게 불안해지네요. 승우가 두 번째 연애라고 했죠?


[신입 이별 사자] : 선배님 엄청난 서프라이즈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대감을 모두 제거한 상태에서 짜잔! 감동을 몇 배 증가시키는 거죠.


[이별 사자] :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고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상대 이별 사자가 느끼는 불안감만큼이나 나의 불안함도 커져있었다. 내 눈에 비친 승우는 오래전부터 가느다란 외줄을 위태롭게 걸어 나가듯 보였다. 그 길의 끝이 더 나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절벽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상대방 이별 사자의 불신이 가득한 한마디가 끝나자. 승우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승우] : 이 곳이야. 내가 너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던 곳.


골목길 구석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반지하 카페였다. 간판도 없어 아는 사람이 아니면 한눈에 찾기 힘들어 보였다. 승우는 왜 평범함을 넘어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이 곳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데리고 온 걸까. 혹시 세희는 소중한 사람이 아닌 소중한 사람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스쳐가는 인연에 불가한 걸까. 아니면 정말 이것이 승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건가. 수만 가지 생각이 나를 스쳤다. 불안한 마음에 세희의 표정을 서둘러 살폈다. 세희도 나와 같이 조금은 당황한 듯했으나 애써 표정을 감추는 듯했다.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리가 없는 둔감한 승우는 홀로 신이난 나머지 카페 문을 열고 세희를 방긋 웃으며 이끌었다.


[이별 사자] : (고개를 떨구며) 저 눈치 없는 인간.... 휴...


[(여자) 이별 사자] : 여전히 재미있네요...


[이별 사자] : 여전히??


[(여자) 이별 사자] : 아니에요. 저희도 들어가죠?? 어떤 곳인지 궁금하네요.


[신입 이별 사자] : 진정 서프라이즈는 없는 거겠죠??? 카페 내부가 다 금으로 되어 있다거나. 카페를 통째로 빌렸다거나 이런 거 말이죠.


[이별 사자] : 후배님. 포기해야 할 때는 빨리 포기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일단 승우를 믿어 봅시다.


승우를 따라 들어선 카페는 밖에서 상상하며 그렸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햇볕이 들어오는 곳이라고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목만 보이는 작은 창문이 다였지만 의외로 어둡거나 칙칙하지 않았다. 오히려 붉은 벽돌과 이색적인 무드등이 만나 만들어낸 붉은빛에 푸른 바다가 붉은 노을에 물들 듯 이 좁은 공간도 따뜻하게 물들고 있었다. 카페의 모든 것을 한눈에 담겠다는 생각은 욕심이었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에서부터 테이블, 의자까지 이곳에는 무엇하나 흔하고 뻔한 것을 찾기 어려웠다. 마치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은 이 곳에 다 모여 있는 듯했다.


[카페 주인장] : 승우. 오랜만에 왔네?


[승우] : 네 잘 계셨죠? 카페 분위기가 더 좋아졌어요 ^^.


[카페 주인장] : 이게 다 떠돌이 승우 기장님 너 덕분이지.. (미소 지으며) 오늘은 혼자가 아니네. 그럼, 인사는 다음에 하자. 항상 앉던 그 자리에 앉을 거지? 아마 비어 있을 거야.


승우는 멋쩍은 듯 짧은 미소로 답하고는 세희와 함께 창문 아래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세희] : 오빠! 자주 오는 곳이야?


[승우] : 응. 예전에는 자주 왔었어. 요즘엔 통 오지 못했지. 어때 이 곳??


[세희] : 밖에서 보던 거랑 정말 달라. 너무 이쁜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은 거 같아.


[승우] : 여기 있는 것들 중 절반 정도는 내가 기증한 거야. 저기 선반에 앉아 있는 빨간 모자 쓴 목각 인형 둘이 보여?


[세희] : 응! 저거 너무 귀여운 거 같아. 저것 두 오빠가 가져온 거야?


[승우] : 응. 저건 탈린이란 도시에서 데리고 왔어. 그리고 저기 보이는 찻잔 있지... 저건 이탈리아에서 가져왔는데 저기에 얽힌 사연이 엄청 재미있어 어떤 일이 있었냐면... (생략)


이 곳은 오랜 시간 승우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공간이었다. 승우가 만들어낸 작은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승우는 자신의 세계에 세희를 초대했다. 화려하고 빛나는 가면을 쓴 승우 보다 진실된 승우가 담겨 있는 곳으로 말이다. 세희도 첫 데이트 장소로 선정된 이 곳이 꽤 마음에 들어 보였다.


[(여자) 이별 사자] : 승우라는 남자 제법이네요. 솔직히 이런 곳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별 사자] : 그럼요. 제가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자) 이별 사자] : 이걸 미리 예상했다는 거예요? 아까 한숨 쉬면서 포기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이별 사자] : 뭐 말이 그렇다는 거죠.


[신입 이별 사자] : 역시 서프라이즈가 있었습니다. 선배님들 아까 말씀드렸던 거 기억하시죠? 선배님들???? 제 말 들리십니까????


그 후로 승우와 세희는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덕분에 우리 이별 사자들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상대 이별 사자는 나와는 다르게 많은 여성 인간들의 담당자로 일해 온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우리는 서로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뭇 달라 보였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동일한 시공간에 같은 생명체의 사랑이라는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되었다. 서로 다른 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내가 바라보고 정의 내린 사랑이라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우리의 대화를 잠시 멈춰 세운 것은 세희의 애교 섞인 목소리 때문이었다.


[세희] : 오빠 우리 사진 찍자. 여기 조명 너무 이뻐! 일루 와.


사진... 사진???? '사진'이라는 단어는 등장만으로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오래전 내가 신입 이별 사자였을 때의 일이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이 새롭고 어리숙하기만 한 풋내기 이별 사자 중 하나였다. 모든 것이 미숙했던 나에게 담당 커플의 존재는 내 삶에 중요한 일부이기도 했다. 수많은 행복했던 순간들을 사진에 담아 오랫동안 기억하려는 듯 그들은 유독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했기에 나는 자연스레 그들의 추억 속에 수차례 흔적을 남겼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그들은 결국 권태기라는 테스트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서로 쌓은 사랑의 높이만큼 이별의 낙상이 남긴 상처가 아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이별을 수습하려 할수록 두 사람의 아픔에 깊이는 더욱 깊어져 가는 듯했다. 시간의 약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사진 속에 담긴 나라는 이별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그들이 사진 속에 담은 사랑의 추억은 나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아픔으로 물들어 이별의 추억이 되었다. 상처가 아물어 갈 때쯤이면 사진 속에 담긴 이별의 존재를 느껴서인지 그들은 더욱 아파했다. 결국 나는 그 사진을 모두 불태워 세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그들을 인도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단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완전한 이별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떠한 사진에도 나의 존재를 남기지 않는다.


[이별 사자] : (서둘러 말을 꺼내며) 저희는 잠시 자리를 비워주죠?


[신입 이별 사자] :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분위기 한참 좋은 것 같은데.


[(여자) 이별 사자] : 그러게요. 좀 더 이야기 나눠요. 애들 사진 찍는 것도 좀 보고.


[이별 사자] : 일단 나가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가서 말해줄게요.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온 상대 이별 사자와 후배는 한참을 나에게 투덜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우가 나와주지 않았다면 나의 달팽이관은 피바다를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이별 후에도 가끔 그 시절 사진을 들춰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유는 이별 사자의 배려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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