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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Feb 22. 2023

커피 한 잔의 여유

출근을 하면, 샷 하나를 내려, 일하며 마실 커피를 한 잔 만든다. 그것이 근무의 시작이다. 문제는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커피를 마실 시간이 없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우연히(!) 출근하며 내린 커피를 발견? 한다.  뜨아는 아아가 되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커피가 식어서 빠른 속도로 마실 수 있다는 것. 다만, 이건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벌려 놓은 일을 뒤처리하는 기분이다.


혹자는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냐, 일을 해야 하니까 마시는 거지, 한다. 최근 한국의 카페 숫자와 커피 소비량 증가가 이와 관련이 있다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난, 커피를 맛으로 마셨다.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녔다. 한 모금에 다양한 맛을 찾아내는 과정이 좋았다. 그런데 이젠 커피가 아무 맛도, 아무 향도 나지 않는 물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다니.


그렇게 커피 맛에 권태를 느끼던 중, 쉬는 날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집 근처 카페에 갔다. 주문한 커피 한 잔을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기 전, 커피 한 모금을 마셨는데, 어 뭐지? 커피의 맛과 향이 온몸에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알던 커피 맛이고 특별히 더 맛있게 내린 커피도 아닌 것 같은데 ‘맛’이 느껴졌다. 정말 맛있었다. 이유가 뭘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남이 차려주는 음식'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커피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내가 만드는 커피보다 남이 만들어주는 커피라서 맛있는 것일까? 그건 웃자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 그날 커피가 맛있었던 것은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 중 하나 세상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그 속도에 맞추면서 여유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 역시 커피 한 모금을 음미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근무 전 작정하고 여유를 누려본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쓴다. 옆에는 커피 한 잔이 놓여있다. 맛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카피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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