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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시간

솔이의 암치료

by 페넬로페

나는 멈춰있는데, 우리의 일상은 흐르는 요즘, 아이의 삶에 투영된 '함께'라는 시간이 흐르니, 나는 나아가는 걸까? 내 삶이 정체된 것 같아 슬픔이 몰려올때쯤 내가 삶을 살아내고 있는게 맞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곤한다. 아이가 암진단을 받은 이후 내가 알던 시간은 멈추었으니 난 이 정체된 삶에서 나의 시간으로 돌아가 내 삶을 살아낼 것이라고 이야기 해야 하나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내가 아이와 보내는 삶이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인지, 내가 어떤 시간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아이가 암덩어리를 몸에 지닌다는 것은 내가 하던 일을 멈추게 하고 내가 지키려 했던 사람들과의 약속도 파괴시킨다. 암을 가진 아이의 엄마에게 허락된 시간은 온전히 이 아이와 순간을 나누는 삶 뿐인 것이다.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여지는 엄마의 정체는 가족에게 극도의 충격이었던 현실을 이겨내도록 하는 힘이되기도 하니까. 나는 기꺼이 나의 시간을 멈춘다.


아이가 마주하게 될 현실은 끝도 없이 추락하는 면역력과 외로움일테고, 아이의 삶에서도 타인은 사라질테니, 엄마로서 나도 내 삶에서도 사람들을 밀어내는게 당연했고 우린 그렇게 함께 해야만 하는 운명앞에 있었다. 다행인 것은 세상의 것들을 뒤로하니 그제야 난 내 아이의 삶이 보였고, 나는 아이의 세상이 되었다.


사실 이제 내가 하던 일이라는 게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잊혔으며, 현재는 아이와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감만 가슴을 채우고 있다.


이젠 이것들이 나의 시간인 건가?


소위 내 시간은 너무나도 단조롭다. 아이의 삼시 세끼를 준비하고, 5살 아이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에 실시간으로 답하고, 청소와 빨래, 강아지 산책까지 마치면 저녁 9시가 되어 있는 삶, 정신없이 흐르지만 누구도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일상유지를 위한 시간, 이게 내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나를 잃지 말라며 독서대를 선물했는데, 활자로 채워진 종이 한 장 제대로 읽어낼 시간을 찾아내지 못하는 나는 덩그러니 놓인 그 독서대가 안타까워 그 위에 아이의 책들을 놓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새벽 3시를 향해가는 중이니, 겨우 잠잘 시간을 빼내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이 순간이 내 시간인지 억지인지 잘 모르겠다.


사방이 막혀있고 그 주변을 감싸는 세상만 커져가는 일상에서, 아이와 가족을 위해 살아가다 보니 숨통이라도 트여볼까 친언니에게 전화해 보지만 엄마가 아픈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뒹글거리던 가슴마저 그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그래도 요즘 들어 계속 덤덤해있는 나는, 불현듯 나와 9살 차이 나는 언니의 환갑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 또한 그 언저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구나 싶기도 한 상태로, 엄마의 병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일지도 모른다며 위안하는 담담함으로 전화 통화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흐르는 병간호 속에서, 끝이 보이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는 막막함이라도 없으면 좋으련만, 모든 게 불확실하니 내가 슬픈 건지 무뎌진 건지도 모르겠고, 멍하니 봄이 되어 가는 볕 속에서도 내가 우울한 건지 괜찮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잠시 너무 밝은 봄볕에 빠져 있다가 솔이가 엄마라고 부르면 자동으로 웃음을 짓고 장난을 치는 나는 건강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오늘도 흐른다.


#병간호 #신경모세포종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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