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이의 암투병 35일
아들과 세 번째 입원생활을 보내며 오늘은 호사롭게 글을 써본다. 솔이의 암이 지난 6월 11일에 처음 발견되고 정신없이 슬픔을 감당하던 때를 지나, 지금의 나는 컴퓨터를 켜고 끄적일 만큼 이 생활에 적응 중인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입원생활도 나름 단짝친구의 놀이시간처럼 흘러가고 있다. 솔이와 나는 병원의 6인실 한 중앙 자리에 갇혀 둘만의 결속을 확인중이다. 물론, 이곳에서 마음껏 소리를 낼 수도, 솔이가 좋아하는 춤을 함께 출수도 없지만, 때마침 의사와 환자 놀이에 푹 빠져 있던 솔이에게 병원은 우리의 친밀감을 확인하기에 완벽한 장소이다.
솔이는 환자로 누워 있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늘 의사 또는 간호사로 정하고 나에게는 환자의 역할을 부여한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솔이의 몸 어디에서도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의사로 변신한 솔이는 내 온몸에서 혈관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내 손에 고무줄을 묶고 손으로 탁탁 때리며 이쪽저쪽을 살피곤 ‘안 아프게 해 줄게요.‘라고 한다. 그럼 환자인 나는 나름 안도되지만 솔이는 주변의 도구를 주사기 삼아 정말 온 힘을 다해 내 손등을 찌른다.
아…. 정말 아프다. 솔이에게 주사는 이렇게 아프구나...
하지만 병원놀이도 10분이 지속되지 못한다. 힘없는 솔이는 지친 모습으로 그냥 누워있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잠이 들고, 그러다 잠이 깨어 한 마디 하는 말이 '엄마 나 배 아파..'정도..
이렇게 우리의 병원 생활은 조금 놀고 자기, 치료받기, 그리고 순간을 지키는 나로 채워지고 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솔이의 암이 발견되기 전, 솔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빠르고, 이것 저건 표현도 다양하게 할 수 있다고 기뻐하던 찰나였으니...
솔이는 병원에서도 아픔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기분을 말로 표현하고, 목마름, 배고픔, 화장실에 가고 싶고, 지금 기분 상태가 어떤지를 알려주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솔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배 아파'이다. 상상도 못 할 커다란 암덩어리가 척추로부터 시작되어 배 한 중앙인 대동맥을 감싸고 있으니 그 고통을 감히 내가 이해할 수나 있을까? 솔이의 뼈와 골수에도 그 조각들이 퍼져 있다는데... 그 고통은 어느 정도 일까? 항암주사는 이 암덩어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니, 그 암덩어리 또한 솔이의 살덩어리라면 그 고통이 너무 클 것이라는 것을 나는 짐작만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손을 솔이의 배 위에 놓고, 어루만지며 '엄마손은 약손'을 하루종일 읊어주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솔이와 난 손바닥과 배로 연결된 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기도 하고, 같이 눈을 마주하며 웃기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물론 그러다가도 갑자기 격해지는 고통을 내게 눈빛으로 알리기도 하지만, 나의 손이 솔이의 배 위에 올려져 있는 순간동안은 솔이는 배가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는다. 2년 10개월을 살아낸 아이의 모습이 맞는가 싶을 정도이다.
솔이의 몸에 꽂힌 항암주사는 너무 무섭다. 인간이 가진 모든 세포를 파괴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기에 솔이의 암덩어리와 함께 솔이의 건강하던 그 조각들도 죽여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차 항암주사를 맞고 가까스로 회복한 솔이가 겪게 된 연속된 항암주사약. 다시 뱃속 여기저기를 건들고 다닐 것이다.
솔이가 좋아하는 책 '코크니병을 물리쳐라'에서는 강아지 나라에 '바바'라는 의사 선생님이 코가 커지는 병인 '코크니병'을 경험하면서 예방주사를 발견하여 더 이상 코크니병이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솔이가 앓고 있는 신경모세포종도 비록 일 년에 65명 정도 걸리는 병이지만 예방주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동안 이 병에 결려 회복한 아이들의 삶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치료 후 재발과 치료를 반복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암의 재발을 최소화한다는 그 주사의 엄청난 가격과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신경모세포종 치료에 대한 의료 수준은 계속 발전하는 것 같다. 미국의 경우 vaccinaton을 위한 주사도 시도되고 있다고 하니 솔이의 항암이 끝나는 1년여 시간 후에는 한국에도 새로운 시도와 도입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어쨌든 항암치료를 하는 아이들이 같은 병실에 모여 배의 고통을 호소하고,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계속 구토하는 소리를 커튼너머로 듣는다. 병실에서는 모두 조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밤새 우는 아이, 어떤 것도 먹을 수 없는 아이, 말없이 토하는 아이. 모든 소리가 커튼을 넘어 들린다. 그리고 난 알 것 같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모든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배 위에 따뜻한 손을 만들어 올려놓았을 것을... 그리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아이의 배에 약손의 힘을 전달하고 있을 것이란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