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턴 시험과 레지던트 선발이 있었다. 우리 인턴들은 모두 원하는 과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에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과에 갈 수는 없다. 경쟁은 필연적인 것이다. 레지던트 선발은 보통 인턴 성적과 인턴 시험 결과, 면접과 학생 시절 성적 이 네 가지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 11월 초에 인턴 성적이 나오고, 12월 초에 모든 인턴들이 함께 보는 100문항으로 구성된 인턴 시험을 치르고 얼마 안 있어 최종 면접을 치른다. 경쟁 상대가 있는 과를 지원한 친구들의 경우에는 정말 피 말리는 시간들이지만 내가 최종 지원한 내과는 경쟁이 없는 과였다. 적당히 시험 준비를 해서 평균 정도의 시험 성적을 받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면접을 봤다. 경쟁이 없어도 시험공부를 한 이유는 인턴 시험 성적이 낮을 경우 교수님께서 ‘이런 애를 왜 뽑아야 하는가’에 대한 사유서를 써야 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었고 설령 사유서를 쓰신다고 화를 내실 분들도 아니시지만 학생 때부터 내가 많이 좋아했었던 내과 교수님들이 나 때문에 사유서를 쓰시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름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였다.
보통 선발 기간이 되면 인턴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기 마련이지만 우리 병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끼리 사이가 정말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취과와 영상의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들은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자리에 다섯 명이 지원을 했던 정형외과의 경우 한 친구는 신경외과로, 한 친구는 안과로 그리고 다른 한 친구는 내과로 왔다. 모두 다 이유는 더 재밌어서였다. 참 특이한 친구들이었다. 재밌는 걸로 자기 직업을 선택하다니.. 하기야 멋있다고 내과를 간 나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같이 이비인후과를 지원했던 다른 한 친구는 소아과를 갔다. 소아과 선생님들이 정말 다들 너무 천사이기도 하고 소아과에서 이 친구를 정말 많이 예뻐했기 때문이었다. 수련을 받을 때 윗년차 선생님의 애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친구는 정말 잘 선택한 것 같았다.
다른 병원으로 가는 친구들도 많았다. 내가 외과 중환자실에서 콧줄을 꼽는데 실패해서 난감해하고 있을 때 30분 동안 같이 콧줄을 끼워주었던 J는 옆 병원 마취과로 떠난다. 쾌활한 성격에 인턴 초부터 우리들 사이에서 일 잘하기로 유명한 친구라 거기서도 많은 예쁨을 받을 것 같다. 우리 병원 성형외과 TO가 없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절망했던 Y는 다행히 다른 병원 성형외과에 합격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였던 Y가 외부 병원 성형외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우리 모두들 Y를 축하해주었다. 입담이 정말 좋아서 항상 인턴 당직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어주었던 S는 다른 병원 정신과에 합격하였다. 정말 재밌고 말도 잘하는 친구여서 정신과랑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병원들이었고 정말 괜찮은 과들이다. 이들이 이렇게 좋은 곳으로 간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조금 슬프기도 했다.
이렇게 일 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고 슬프고 서러울 때도 많았지만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던 그런 한해였다. 내년도 딱 올해 같기만을 바라며, 나의 동기들, 선배님들, 교수님들, 간호사 선생님들도 모두 그러하길 빈다.
끝으로, 이제 곧 인턴을 시작할 우리 후배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인턴 초반에는 정말 많이 힘들 것이다. 아무리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채혈의 압박감, 실수해서 환자한테 해를 끼칠까 드는 두려움, 잘해야 된다는 강박감과 이에 대비되게 어리숙 하기만 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 하지만 처음에는 못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이런 것들 때문에 상처 받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꿋꿋하게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병원 생활에 적응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인턴의 시간은 끝났지만 의사로서의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내과 교수님처럼 사람 살리는 법이 몸에 밴 의사가 되고자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