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성형외과를 돌게 될 인턴 친구에게 성형외과 인계를 해 주고 왔다. 많은 사람들은 성형외과에서는 인턴한테 시킬 일이 없어서 인턴은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출근은 일찍 하고 퇴근은 늦게 해서 항상 잠이 부족하고 피곤했던 두 달이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와서 밥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는데 그동안에 잠이 들어서 그 도시락을 다음날 아침으로 먹고 출근한 적도 있었고 잠시 누워서 오레오를 씹다가 그대로 입에 물고 잠이 들었던 적도 있을 정도로 피곤했던 나날들이었다.
성형외과의 출근 시간은 4시 30분이다. 4시쯤 일어나서 씻고 병원에 가서 먼저 환자 명단을 만든다. 뚝딱뚝딱하는 이 작업은 10~40분 정도 소요된다. 매일 마다 걸리는 시간 차이는 큰데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출근해야 한다. 그 뒤 성형외과 의국으로 가서 명부를 15부 정도 복사하고 이 명부를 필요로 하는 곳들에 배달한다. 중간중간에 카메라 충전도 한다. 이 작업은 10분 정도 소요된다.
그리고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병동으로 올라가 드레싱 준비를 시작한다. 소독하기 용이하도록 환자 수에 맞춰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고 수술부위 표시를 한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알람을 맞춰놓고 구석에서 잠시 엎드려 잔다. 그리고 7시가 되면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리고 각 병동에 흩어져 있는 환자들도 부른다. 7시부터 수술부위 소독이 시작되는 것이다. 15~20명 정도의 환자를 성형외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소독한다. 이때 우리가 하는 일은 보조다. 눈치껏 환자를 들여보내고 필요한 물품을 챙겨주고 하면 된다. 소독이 끝나면 대략 8시 정도 된다.
8시에 수술방에 내려간다. 수술방 침대를 수술에 맞게 돌려놓고 보기 좋게 컴퓨터에 CT, 입원 기록지를 띄워놓는다. 수술에 따른 수술 준비물들도 미리 챙겨놓는다. 8시 30분쯤 환자가 수술방으로 오면 환자와 함께 수술방으로 들어간다. 심장의 기능을 확인하는 모니터와 숨을 잘 쉬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모니터를 붙인 뒤 소독을 하고 나면, 제일 바쁜 오전의 4시간은 끝이 난다.
수술 중에 성형외과 인턴은 별로 할 일이 없다. 성형외과는 수술부위가 작아서 3명만이 수술에 들어갈 수 있다. 한 명은 교수님이고 한 명은 숙련된 보조자가 필요하다. 주로 3년차 선생님이 이 역할을 수행한다. 나머지 한 명은 1년차 선생님이 들어간다. 인턴이 하는 일은 앉아 있다가 간간히 불을 맞추고 전화가 오면 받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져오는 일이다. 잠시 앉아서 지친 심신을 달래 본다. 보통 수술들이 끝나면 3~4시 정도 된다. 수술이 끝난 뒤 동의서 뽑아서 외래로 배달하기와 몇 가지 서류 정리를 하면 일과가 끝난다. 물론 당직이 있으면 당직도 선다. 일의 강도 자체는 그렇게 빡세지 않다. 오히려 내과와 같이 병동 일을 하는 곳에서 일할 때보다 다리는 훨씬 덜 아팠다. 다만 안 그래도 잠이 부족한 인턴에게 매일 2시간씩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정말 너무 피곤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과보다 더 열정적이게 성형외과를 돌았다. 그 이유는 성형외과 시작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형외과 지원자 중 하나였던 한 형은 꽤나 유쾌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형과 자주 대화를 나눴었다.
“성형외과 일 년차 선생님이 너 엄청 좋게 보더라.”
“아 진짜 왜??”
“인사 잘하고 이런 거 엄청 중요시 여기거든. 그래서 막 우리 TO 한자리 늘면 너 데려오자고 너 어떤 애인지 물어봤었어.”
“대박이네.”
물론 이때는 이미 우리 병원 성형외과 TO가 발표가 끝난 시점이었고 우리 병원 성형외과 티오는 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좋게 봐주신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꽤나 강력한 동기였고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
성형외과 일들은 사실 무척 흥미로웠다. 수술 시 피부를 많이 떼어내야만 하는 수술 등의 몇몇 수술에서는 수술 후 봉합이 매우 어렵다. 이럴 경우 성형외과에 수술 후 봉합을 의뢰한다. 그러면 성형외과에서는 수술부위를 보면서 치밀하게 디자인을 한 뒤 봉합을 한다. 이런 점이 굉장히 신선하고 또 흥미롭게 느껴졌다. 얼굴 골절 관련 수술들은 눈이나 입 쪽으로 수술 부위에 접근해서 수술을 하는데 이런 점도 굉장히 재밌었다. 광대뼈 수술인데 입 안쪽과 눈 아래쪽을 절개해서 광대뼈 수술을 할 수 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나를 좋게 봐준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열심히 일했었고 그러다 보니 성형외과가 꽤나 흥미로워졌고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인턴 성적이 이미 나온 뒤에도 열심히 한다는 점이 교수님 눈에 좋게 비쳤었는지 교수님은 나를 성형외과 회식에 초대하셨다. 레지던트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인턴들 중에서 최초라고 한다.
“자네 꽤나 마음에 드는데 내년에라도 성형외과 지원해 볼 생각은 없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과에 오라는 제안을 하는 것은 인턴에게는 가장 큰 영광이고 그 과의 일을 잘 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나 성형외과 같은 인기과에서는 '우리 과 올래?' 한마디에 정말로 지원과를 바꿔버리는 인턴들도 많기 때문에 농담으로라도 이런 말을 잘하지 않는다. 그리고 교수님은 꽤나 진지해 보였다. 아쉽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이미 내 진로를 정한 뒤였기에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정말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일 년을 쉬면 바로 군대를 가야 해서.. 저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그렇네. 군대가 있구먼. 허허..”
교수님은 정말로 아쉬우신 표정이었다.
성형외과의 교수님은 유쾌하신 분들이셨고 성형외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다들 합리적이고 후배들을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내가 실수를 해도 화를 내기보다는 “아 맞다 이거 안 해봤겠구나.”하시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분들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 괜찮은 과가 몇이나 있을까'하는 생각에 많은 아쉬움이 생겼지만, 내가 가는 내과 역시 너무도 좋은 사람들만 모인 곳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털어버리기로 했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고, 레지던트 선생님께서는 감사한 인사말을 주셨다.
“그동안 수고 정말 많았어. 인턴 성적도 이미 나왔고 인턴도 끝나가는 때여서 일하기 진짜 싫었을 텐데 열심히 해줘서 정말 고맙다. 내년에도 같이 밥 먹고 잘 지내자:)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저도 그동안 잘 챙겨주시고 잘 가르쳐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나의 성형외과는 훈훈하게 끝이 났다. 나름 괜찮았던 두 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