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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 시간- 20. 나 A 턴이야

인턴 성적을 확인하러 오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3월부터 인턴들은 한 달 단위로 과를 바꿔가면서 여러 과를 돈다. 그러면 각 분과의 교수님 및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그 과에서 일한 인턴의 근무태도를 평가해서 점수를 매긴다. 3월부터 10월 말까지 총 8개월 동안의 점수가 더해져서 인턴 성적이 나온다. 바로 그 8개월 간의 노력이 집합된 공지가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인턴 성적 총점이 나오면 인턴 성적 상위 35%에게는 A턴을, 그 아래 40%에게는 B턴을, 그리고 하위 25%에게는 C턴을 준다. 인턴 성적은 등수까지 나오지만 레지던트 선발에서는 등수는 중요치 않고 A턴인지 B턴인지 C턴인지에 따라서 점수가 매겨진다고 한다. C턴일 경우 감점도 크지만 일을 잘 못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기 때문에 레지던트 선발 과정에서 매우 불리하다. A턴의 경우 B턴에 비해 가산점은 크지 않지만 노력했고 일을 열심히 했다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정성적인 평가가 가미돼 선발과정에서 유리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들의 목표는 A턴을 받는 것 또는, 적어도 C턴은 받지 않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당시에 이비인후과 지원자로서 2명의 다른 지원자와 경쟁하고 있었던 나는 A턴이 굉장히 절실했다. 하지만 센스가 부족하고 어리바리하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 나는 A턴보다는 C턴에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심지어 레지던트 선배나 인턴 동기들 중에서도 특별히 친한 사람도 없었다.     

 고로, 센스도 부족하고 믿을 빽(?)도 없었기에 나는 항상 걱정이 많았다. 과가 바뀔 때마다 어리바리한 내가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인계를 두 번 세 번이고 확인하였고 인계에 적혀 있는 대부분의 내용들을 직접 한번씩은 해봐야 그나마 걱정을 내려놓았다. 환자 명단을 만드는 일이 있으면 전날에 꼭 미리 한번 만들어보았고 수술과 라면 아무도 없는 밤에 수술방 세팅을 미리 연습해보고는 했다. 또 소독 보조 업무가 있는 과이면 전 주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내 일을 미리 끝내고 소독 보조하는 걸 여러 번 직접 보러 갔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여기 갈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해 ㅋㅋ”     

 당시 이런 얘기를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실수할까 봐 걱정이 돼서..”     

 또 이런 대답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나는 정말 내가 실수를 할까 봐 많이 두려웠었다.

     

 병원에 친한 친구가 별로 없기 때문에 나를 잘 모르는 대다수의 동기 인턴들에게 뺀질거리는 인턴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서 퇴근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는 일이 있으면 꼭 하고 갔다. 가끔씩은 5시~6시 사이에 일이 정말 많아져서 6시를 훨씬 넘어도 일이 남아 있을 때가 있다. 이럴 경우 그냥 뒷일은 당직한테 맡기고 가는 경우도 꽤나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 7시가 되던 8시가 되던 나의 모든 일을 마치고 퇴근했다. 꽤나 힘든 날들도 많았지만 괜히 일을 남기고 갔다가 나를 모르는 대다수의 인턴 동기들에게 막장인 인턴으로 낙인찍히는 게 더 두려웠다.     

 나랑 친한 선배들이 없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안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이 내 이미지로 굳혀질까 두려워서 인사도 열심히 하였고 선배 레지던트들이 뭔가를 시킨다면 항상 뛰어갔다. 그리고 인사도 대충 한다는 느낌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항상 90도로 했다.     

 “이 사람 약 어떤 거 먹었는지 용량이랑 횟수까지 해서 좀 더 자세하게 조사해 주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네 알겠습니다.”를 크게 외치며 하고 있던 일은 잠깐 두고 시킨 일을 하러 바로 뛰어갔던 것 같다. 급하든 급하지 않던 일단 뛰고 봤다.     

 솔직히 이런 걱정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괜한 걱정들이었다. 선배님들도 한때는 인턴이었기 때문에 과가 바뀐 다음 초반에 하는 실수는 꽤나 너그럽게 이해하신다. 일하면서 다음 턴 인계까지 완벽하게 받기가 때에 따라서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정말 어렵다는 걸 잘 아시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인계를 받는 걸 기대하지 않는다. 별거 아닌 일로 남을 헐뜯는 인턴은 생각보다 정말 없다. 퇴근 시간을 훨씬 넘어서까지 일을 할 필요도 그렇게 열심히 도우러 뛰어다닐 필요도 없었다. 병원은 다들 바쁘기 때문에 인사를 몇 번 빠뜨렸다고 이걸 빌미로 뭐라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윗사람들도 부탁을 할 때 웬만큼 급한 게 아닌 이상 뛰어가서 그걸 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한 번 돌이켜보면, 이런 행동들은 쓸데없는 짓이 절대 아니었다. 인계를 열심히 정말 열심히 받은 덕분에 나는 큰 실수 없이 인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각 과에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일처리를 깔끔하게 해서 한 번쯤 더 시선이 가는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저녁 7시가 되던 8시가 되던 있는 일은 전부 다 하고 간 덕분에 나는 일을 절대 떠넘기지 않는 인턴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윗사람들에게 항상 90도로 인사하고 시키는 일은 무조건 최우선 적으로 뛰어다니면서 처리한 덕분에 나는 예의 바르고 공손한 인턴이라는 이미지도 얻을 수 있었다. 어떤 레지던트 선생님은 우리 티오 한자리 늘면 쟤 데려오자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욕을 먹을까 봐 안 좋은 시선으로 비칠까 봐 두려워서 했던 행동들은 나에게 정말 열심히 일하고 일을 절대 떠넘기지 않으며 공손하고 예의 바른 인턴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선물했다.     


 일을 하다가 교육수련부에 가서 인턴 성적표를 받았다. 결과는 인턴들 중 7등, A턴이었다. 인턴 초반에 내가 그렇게 꿈꿔 왔던 그런 점수이기도 했고 나는 아마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점수이기도 했다. 걱정이 많은 나에게 인턴 생활은 정말 힘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한때는 쓸데없는 걱정만 해대는 나 자신이 싫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 성적표 하나로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걱정이 많은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난 부단히 노력한 A턴 인턴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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