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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원 Mar 09. 2023

염소치즈 생각

  오늘 점심 무렵, S는 하릴없이 포털사이트를 기웃거리다 순간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느 개발도상국이 종교 단체의 지원으로 산악영농기법을 전수 받아 염소 사육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시선을 붙잡은 거였다. 독자적인 종균 배양을 통해 치즈도 생산할 계획이라고 했다. ‘염소’라는 단어만 도드라지게 와 닿는 기사를 훑어보는데 이 세상에 없는 엄마가 퍼뜩 떠올랐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엄마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S는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느끼다 이내 허망해졌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국어사전 속 ‘고인’으로 다가오는, 분명 시간이 만들어 놓았을 야속한 거리감 때문이었다. 


  엄마는 병마와 싸우기 시작하면서 부쩍 치즈에 관심을 보였다. 숙성될수록 고소한 냄새가 짙게 풍기는 에담, 부드러우면서도 자극적인 향미가 있는 그뤼에르, 구멍이 숭숭 뚫린 에멘탈, 겉이 흰곰팡이로 덮인 카망베르 등등 치즈의 종류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샤를 드골이 이런 말을 했대. ‘이백육십오 종의 치즈를 생산하는 나라를 어떻게 제대로 통치할 수 있겠소?’ 이백육십오 종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근데 설마 이백육십오 종이나 될까…… 치즈는 영양 덩어리라서 운동선수나 발레리나가 선호한다더라. 짜고, 시고, 고소하고, 쿰쿰하고, 이렇게 다양한 맛을 내기 때문에 미식가들의 음식으로 손꼽힌대.” 

  엄마는 급기야 치즈를 입에 달고 살았다. 처음에는 슬라이스 치즈에 짭짤한 김을 얹어 돌돌 말아 먹었다. 치즈에 맛을 들이려는 것 같았다. 그 단계를 거치고 나자 별스럽게도 염소치즈만 찾았다. S는 엄마의 치즈 편식이 의아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 봤지만 염소치즈가 자궁암에 특효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S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인간이 죽으면 그를 대신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내세관에 귀가 솔깃해졌다. S가 내세를 상상하는 방식대로라면 어떤 사람이 죽을 무렵 유독 동백나무를 좋아하면 동백꽃, 우아한 깃털 왕관을 쓴 후투티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매일 호수공원으로 달려갔다면 후투티, 어여쁜 돌을 모으기 시작했다면 바닷가의 몽돌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염소치즈를 질려하지도 않고 꾸준히 먹은 엄마는 염소로 태어나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마음이 좀 느긋해졌다. 

  염소치즈는 아무 데서나 팔지 않았다. 가격도 일반 치즈보다 비쌌다.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승용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 백화점에서 염소치즈를 사왔다. 염소의 젖을 숙성, 발효시킨 영양 덩어리를 엄마는 다른 치아보다 크게 자란 앞니로 갉아 먹었다. 밥은 관두고 염소치즈만 먹는 날도 허다했다. 엄마의 생애는 길지 않았다. S의 눈에 엄마는 볏단처럼 보였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다. 

  “체중이 오십사 킬로그램에서 오십이 킬로그램으로 줄었어. 내 자궁과 난소의 무게가 이 킬로그램이었나.”

  수술실에서 나온 지 이틀 째 되던 날 아침 엄마가 꺼낸 첫마디였다. 몸무게가 나날이 줄어든 엄마는 한여름에도 벨벳 커튼을 치고 있었다. 햇빛이 싫다고 했다. 우아하고 세련된 프랑스 요리에나 어울릴 염소치즈에 나박김치를 곁들여 먹으면서 엄마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엄마는 병원 침대에서 사 개월을 살다가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 혼자서만 ‘행복한 나라’로 떠났다. 아무도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가 모처럼 단골 목욕탕을 다녀온 사이 엄마는 서둘러 저승길을 밟았다. S는 분당 율동공원으로 번지점프를 하러 갔다가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은 기압골의 영향으로 온종일 날씨가 흐렸다. S는 당장 울며불며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끝없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S는 45미터의 번지점프대에 올라 몸을 날리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엄마를 언뜻 본 듯한 그날의 번지점프는 살아 움직이는 영정사진처럼 S의 마음속에 놓여 있다. 


   S는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식품 매장으로 내려갔다. 평일 저녁인데도 시끌벅적하다. S는 유제품 코너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품이 넓은 진열대에 치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치즈의 종류며 브랜드도 다양했다. 그런데 염소치즈는 눈에 띄지 않았다. 

  “손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염소치즈는 없나요?”

  “염소치즈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매장 직원이 어딘가로 종종걸음 쳤다. 판매 도우미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우렁차게 들려왔다. 그녀들은 햄, 만두, 떡갈비, 삼겹살, 우동 따위를 굽거나 삶으면서 목청을 높였다. 누군가의 마음을 끌기 위해 저렇듯 간절히 외쳐본 적이 있었나. S는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공연히 헛기침을 했다. 

  “고객님, 염소치즈는 이번 주 토요일에 들어온답니다.”

  “토요일에 오면 정말 살 수 있는 거죠?”

  S는 염소치즈를 구입할 것도 아니면서, 그것을 필히 사야한다는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어쩌면 염소로 환생했을 지도 모를 엄마가 파릇한 풀밭에서 한가로이 지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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