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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원 Mar 23. 2023

'씨네Q 영천'의 문단속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 한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씨네Q 영천점이 2023년 3월 19일 상영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용하지 않은 유료 영화 관람권은 3월 19일까지 매표소에서 확인 후 환불 처리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말 깜짝 놀랐다. 우연히 만나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전화해서는 내일 이민을 간다고 고백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침묵하다가 봄비 내리기를 기다렸다는 듯 오늘 느닷없이. 영화관으로 얼른 전화해 봤다. 사실이었다. 유독 친근하게 들리던 주인장의 사투리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났다. 그동안 사실 좀 불안하기는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관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내가 상영관을 독차지하는, 주인장에게는 ‘불행’이었을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이 작은 영화관이 언제까지 숨을 쉴 수 있을까. 그곳으로 즐겁게 발걸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달갑잖은 의문이 삐죽 튀어나왔다. 

  영천은, 경주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나의 일상을 고상한 색깔로 물들이다가 눈여겨본 도시다. 이십년 전쯤 딱 한 번 영천에 가봤지만 흐릿한 실루엣으로 남아 있다. 그런 만큼 훌쩍 세월이 흘러 만난 영천은 내게 낯선 도시였다. 무심코 집어든 영천이라는 장편소설이 페이지를 넘길수록 재밌어서 여기저기 밑줄을 그었다. 내가 두고두고 읽는 장편소설 ‘영천’의 줄거리는 이렇다. 


  영천은 길 ‘永’과 내 ‘川’ 자를 씁니다. 강이 길다. 이름이 말해주는 대로 영천에서 길을 걷다가, 또 운전하다가 무심히 고개를 돌리면 강이 보입니다. 별의 도시이기도 하지요. 보현산에 올라가면 별이 빼곡한 밤하늘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장문화도 살아 있어요. 끝자리가 2일과 7일에 서는 오일장, 수요일마다 펼쳐지는 수요 장터. 특히 영천 오일장은 경상도 최대 농산물 교역 장소로 손꼽힙니다. 최무선, 정몽주, 박인로, 백신애, 하근찬의 태생지이기도 하지요. 


  경주에서 영천까지 승용차로 금방 가는데, 내 발걸음을 잦게 만든 또 하나의 맛은 ‘씨네Q’였다. 경주에 자리 잡고 얼마 되지 않아 영천 오일장을 구경하러 갔다. 먹거리, 볼거리, 인정, 사투리, 그리고 생생한 소리가 가득한 장터를 신나게 거닐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별빛영화관’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씨네Q였다. 씨네Q는 서울에도 경주에도 보은에도 있다. 그런데 왜 영천이 돋보이느냐. 그건 바로 전통시장 안에 살림을 차렸기 때문이다. 별빛영화관의 상영관은 1관뿐이다. 좌석은 정확히 76석. 일반 영화관의 관람료보다 반이나 저렴한 값으로 최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입장권을 구입해서 짧은 계단을 올라가면 아담한 상영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 계단을 오를 때마다 우리 집 이층에 영화관이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고급스러운 리클라이너는 아니지만 빨갛고 깨끗한 의자가 내 몸을 편하게 감싸준다. 영화 상영 시간이 되면 주인장이 들어와 “자, 관람할 준비 되셨죠. 영화 시작합니다” 라고 말하며 문을 닫아준다. 어느 영화관에서 이런 인간적인 친절을 받아보나. 별빛영화관은 여러모로 딱 내 취향이었다. 씨네Q 영천의 마지막 상영작은 <스즈메의 문단속>. 3월 19일, 오후 6시 10분 영화였다. 점찍어 둔 영화라서 때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내 씁쓸해졌다. 영화 제목 때문이었다. 주인장이 영업 종료를 앞두고 일부러 그 영화를 선택한 듯 ‘문단속’이란 단어가 아련하게 다가왔다.  


  “이게 정말 마지막 영화예요?”

  “예, 손님들이 마지막에 의미를 두시네요.”

  “그럼요, 사라지는 영화관의 마지막 영화잖아요.”

  “저 녀석들도 마지막 영화라고 아까부터 저러고 있습니다.”

  주인장이 눈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중학생 같은 세 남자가 팝콘을 먹으며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있었다. 

  “갑자기 손님이 몰려와서 정신이 없어요. 포스기를 사용하는 것도 어색하네요. 오늘 벌써 아홉 분이에요. 매일 이렇게 손님이 왔으면 문을 닫지 않았을 텐데…… 평일에는 한 두 분이 영화를 봤거든요. 인건비 때문에 버틸 수가 없어요.”

  아홉 명의 관객을 두고 ‘포스기 사용이 어색하다’고 말하는 주인장, 그간의 사정이 훤히 보였다. 나는 영화 입장권을 손에 쥐고 캐러멜 팝콘과 콜라를 샀다. 마지막이니까 싱글콤보로.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 <언어의 정원>으로 널리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이다. 소녀 스즈메가 재난을 부르는 문을 닫기 위해 분투하는 스토리. 영화 포스터에 새겨진 대로 세상의 운명을 건 문단속이다. 일단 메시지가 분명해서 감상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빼어난 작화와 어떤 향수에 젖게 하는 음악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제 영영 볼 수 없는 공간의 마지막 영화라는 상황이 스크린에 더욱 빠져들게 했을 것이다. 잠깐 실내를 둘러보니 관람객은 모두 11명이었다. 내 뒤로 두 명이 더 들어왔다. 중학생들이 키득거리고, 엄마 옆에 앉아 있던 두 아이가 수시로 들락거렸으나 거슬리지 않았다. 곧 숨이 끊어질 별빛영화관의 명복을 미리 빌어주러 온 사람들이니까.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까지 꼼꼼히 읽고도 못내 아쉬워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일어서자, 주인장이 ‘문단속’을 하는 차림으로 서서 선물이라며 뭔가를 나눠줬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를 선전하는 마우스패드였다. 


  “쓸쓸한 장소가 많아진다”


  머릿속에 새겨진, 또 다른 주인공 소타의 대사다. 우리도 모르게 사라지는 건물, 시가지, 누군가의 고향들…… 웃음소리, 아기 울음소리, 노랫소리, 밥 짓는 소리, 기적소리, 공 던지는 소리, 종소리가 파묻힌 폐허. 이렇게 만든 책임은 분명 내게도 있겠지. 나는 운전석에 앉아 별빛영화관에서 먹다 남긴 팝콘을 하나, 하나 집어 먹었다. 캐러멜 팝콘이었는데 이상하게 달착지근하지 않았다. 별빛영화관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지 못하고 이리도 빨리 스러진, 그 부스러기처럼 느껴져서일까. 씨네Q 영천 별빛영화관은 이 년도 채 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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