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 '사랑의 적'

- 사랑의 적을 보려거든

by 유용선

사랑을 알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자신을 전면적으로 내어줄 사랑 하나

키우며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누군가로부터 존재 깊숙한 사랑과 믿음

몸으로 확인받으며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으면서도 그 사랑

제 한 몸에 가두는 사람은 사랑의 배신자다

사랑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사랑의 불안과 가난과 상처에 몸부림치면서도

사랑의 적을 바로 찾지 못한 사람,

그는 진실로 진실로 불행한 사람이다


박노해참된시작.jpg 시집 <참된 시작>(1993, 창비)은 2016년에 새롭게 단장하여 재출간되었다.


“왜 사냐”는 질문에는 “살아 있으니까”라고 대답하는 게 최선이다. 인생의 답은 인생 자체이니까. 그런데 인간은 너무 복합한 존재라서 그에게 ‘살아있다’는 그냥 목숨이 붙어 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을 상대가 있다’와 같다. (다른 생물들도 그러리라고 추정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연을 구분하지 않은 이 시의 전반부에서, 시인 박노해는 사랑을 하려거든 자신을 전면적으로 내어주고 사랑을 받으려거든 몸속 세포와 존재 자체가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사랑을 받으라고 노래한다.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 문장에 걸쳐 등장한 ‘불행’이란 낱말을 징검다리 삼아 시인은 사랑에 관한 더 큰 불행의 원인을 직설적으로 지목한다. 사랑을 제 한 몸에 가두는 일.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지라도 그 사랑을 자기 몸 한 곳에 가둬버리는 이기적인 진행과 결말일 때, 그러한 사람은 사랑을 배신하는 자라는 논리이다.

아무리 뜨겁게 절절 끓어도 자기 안에 갇혀버린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과 욕망의 화합물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심리학자들은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는 태도에 더욱 가깝다고도 한다.

무서운 일 아닌가, 사랑의 적이 다른 곳에 있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니. 사랑의 적을 보려거든 거울 앞으로 갈 일이다. 거기 이기와 집착과 욕망에 전 갇힌 자의 얼굴을 한 그 사람이 혹시 나 자신은 아닌지.



유용선

독서학교(T.02-338-4338) 대표. 시 애호가. 글쓰기 코치.

시집 <다시, 잊는 연습 걷는 연습>,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 <웃으라 하시기에>

글쓰기 지침서 <글쓰기는 스포츠다>, <낙서부터 퇴고까지>

교양 <7일간의 독서여행>, <성경을 읽었습니다 - 구약성서>, <맞춤법이 잘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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