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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Aug 28. 2019

이집트 탈출

Exodus 1장 1절부터 13장까지

  유태계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100?)는 <유대 고대사 Antiquitates Judaicae>를 통해 B.C. 1446년에 고대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여 원래 거주하던 가나안 땅에 돌아왔다고 서술합니다. 구약성서 가운데에는 토라의 두 번째 경전인 이집트 탈출기(이하 탈출기)가 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히브리 계층은 고센 땅을 중심으로 장장 4백년 넘게 이집트에서 살아 제법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이제 하층계급 출신 재상인 요셉 즉 사브낫바네아를 잊었고, 그를 기억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이가 이집트의 왕 곧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람세스 2세 또는 메르나프타로 추정됩니다. 이 사람은 히브리 무리가 적국과 한편이 될까 두려워 그들을 아예 노예로 삼아 확실하게 장악하려 했습니다. 

  건너왔다는 뜻의 ‘히브리’라는 말은 고대 근동 문헌에서 하비루(habiru), 아피루 등과 혼용되어 널리 쓰입니다. 아피루는 어원상으로 먼지의, 배고픈, 목마른, 맨발의 등의 뜻을 품고 있습니다. 히브리는 법망 바깥의 외국인(아브라함처럼),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야곱처럼), 다양한 종족으로부터 온 노예(요셉처럼), 포로, 용병 등 하류 계층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파라오는 처음에는 히브리인을 성을 짓는 노역으로 혹사시켰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산파들에게 히브리인 아기 가운데 사내아기를 골라 죽이라고 명합니다. 하느님이 두려운 산파들은 히브리 여자들이 워낙 건강해 산파 없이도 아기를 낳는다는 핑계를 대며 명을 거역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갓 태어난 히브리 아기들 가운데 사내아기는 모두 나일 강에 던져버리라고 명합니다. 대학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무렵, 레위 가문의 후손인 아므람과 요게벳 부부에게서 한 아기가 태어납니다. 딸 미리암과 아들 아론에 이은 셋째 아이입니다. 아기의 어미는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강가에서 나는 긴 풀(파피루스)을 엮고 송진을 발라 물이 스며들어올 수 없게 만든 광주리에 아기를 넣고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둡니다. 아기의 누나 미리암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얼마 후 파라오의 딸, 곧 이집트의 공주가 목욕을 하러 나일 강에 나왔다가 갈대 사이에 있는 광주리를 발견했습니다. 시녀를 시켜 그것을 가져오게 하니 그 안에는 잘생긴 사내 아기가 누워 울고 있었습니다. “히브리 아기로구나.” 공주는 이 버려진 아기를 들어 정성스럽게 안았습니다. 미리암이 용기를 내어 그녀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성서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아마도 공주는 곁에 있던 시녀에게 자신이 그 아기를 키울 것이라는 말을 했을 것이고 그 말을 미리암이 들었을 것입니다. 미리암이 공주에게 “히브리 여자 가운데 아기에게 젖을 먹일 만한 사람이 가까이 사는데 제가 데려올까요?” 하고 묻자, 공주는 어서 데려오라고 대답합니다. 공주는 미리암이 데려온 여자가 아기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녀에게 아기를 맡겨 젖을 먹이게 합니다. 젖을 떼고 유모 없이 생활할 만큼 자란 아기는 그때부터는 공주의 양자로서 궁궐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공주는 아기의 이름을 ‘물에서 건졌다’는 뜻으로 모세라 불렀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족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히브리 계층 출신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권력의 압제에 신음하는 히브리인을 보며 그는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어떤 이집트인이 히브리인을 부당하게 때리는 모습을 보고 격분하여 그만 그 이집트인을 죽여 모래에 파묻고 맙니다. 그는 그 모습을 아무도 못 보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얼마 후 서로 다투는 히브리인들을 말리고 타이르다 그 중 하나로부터 “당신이 우리의 왕이나 재판관이라도 된단 말이오?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를 죽이기라도 할 참이오?” 하는 말을 듣고 비밀이 들통 났음을 알게 됩니다. 소식은 금세 파라오의 귀에도 들어갔고, 반란을 두려워한 파라오는 모세를 죽이려 했습니다. 모세는 사막지대인 미디안 땅으로 서둘러 몸을 피했습니다.

  머물 곳을 찾지 못한 모세가 우물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젊은 여자 일곱이 양떼를 몰고 우물가로 와 물을 길어 자기들이 먹기도 하고 양떼를 먹이기도 했습니다.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딸들이었습니다. 모세가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을 때, 이번엔 껄렁껄렁한 양치기 몇 사람이 우물가로 와서는 깔보는 말을 지껄이며 여자들을 쫓아냈습니다. 모세가 일어나 양치기들을 물리쳐 곤경에 처한 여자들을 돕고 여자들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니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이 이야기를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전했습니다. 

  모세 혼자서 사내 여러 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완력이 세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이집트 귀족임을 알 수 있는 옷차림 때문 같습니다.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모세는 르우엘의 집에서 살며 그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맞이했고 장인을 도와 양치기 노릇을 하게 됩니다. 모세는 아내 십보라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게르솜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먼저 파라오를 비롯하여 모세를 죽이려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파라오는 선왕보다도 더 심하게 히브리인들에게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가 장인의 양떼를 몰고 호렙 산에 갔을 때입니다. 틀림없이 불이 붙었는데도 타서 떨어지지 않는 신기한 떨기와 그 가운데 서있는 영적 존재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가 그리로 다가서자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 억눌려 신음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것이니 모세더러 백성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성서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표현했습니다. 

  이 날 모세는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혹시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하느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동안 히브리인은 하느님의 이름을 셈족의 언어에서 빌려왔습니다. 바빌로니아와 가나안에서 신들을 가리키는 데 통용되던 ‘엘(El)'이라는 이름은 만신전의 최고신을 가리킵니다. '엘’은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흔히 고풍적인 수식어들을 동반했습니다. 엘-엘리온(지존하신 하느님), 엘-샤따이(거룩한 산의 하느님), 엘로힘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 야(Yah) 또는 야호(Yahô)도 모세 이전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용된 호칭 같습니다.

  우주의 창조주에게도 이름이 있을 거라는 모세의 발상은 조금 엉뚱하지만, 다신교 환경에서 자란 그의 성장환경으로 보나 인식 한계로 보나 충분히 함직한 생각입니다. 아무튼 하느님께서는 ‘나는 곧 나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나다’에서 유래한 히브리어 ‘야훼(또는 여호와)’가 그 뒤로 지금까지 히브리인 사이에선 하느님의 이름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야훼(Yahweh, YHWH)는 ‘계시는 분’, ‘있게 하는 분’ 등을 의미하므로 ‘없는’ 피조물인 우상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성서를 마저 읽으면 저절로 알겠지만, 하느님 또한 인간이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굳이 막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특정한 이름보다는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으로 즐겨 호칭하셨습니다. 믿음(아브라함)과 약속(이삭)과 축복(야곱)의 신.

  하느님께서는 말주변이 없어 두려워하는 모세에게 그의 지팡이에 이적이 따라다닐 것임을 알려주시고 어눌한 말솜씨를 보완할 사람으로 그의 형 아론을 데리고 가라 명하셨습니다. 형제가 하느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집트 파라오에게 나아갔을 때, 모세의 나이는 여든 살이었고 아론의 나이는 여든 세 살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가서 하느님의 명령을 전했을 때 파라오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모세가 말합니다.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파라오가 답합니다. “너희는 어째서 백성이 일을 하지 못하게 부추기느냐?”

  왕이 보는 앞에서 아론이 지팡이를 던졌을 때 하느님께서 그것을 뱀으로 변하게 하면 파라오는 이집트 마술사를 시켜 같은 술법을 부리게 했습니다. 비록 아론의 뱀이 이집트 마술사의 뱀들을 모두 삼켜버리긴 했지만 파라오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론이 지팡이로 강물을 치자 강물이 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마술사들이 같은 술법을 부리자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피의 재앙이 내린 지 칠일이 지나 아론이 지팡이를 강과 운하와 늪 쪽으로 팔을 내밀자 이번엔 개구리들이 떼 지어 나타났습니다. 이집트 마술사들도 똑같은 술법을 부렸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에게 개구리들을 치워주면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주겠다 약속했습니다. 이튿날 모세와 아론이 기도하자 강에 있는 개구리를 제외한 집과 뜰과 밭에 있던 개구리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파라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아론이 지팡이로 땅의 먼지를 내리치자 먼지가 이로 변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흉내 내지 못했습니다. 파라오는 이 재앙을 보고 신의 능력이라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넷째 재앙은 파리였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파리가 이스라엘 백성이 머무는 고센 땅을 제외한 이집트 전역을 덮었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가 제사를 지낼 것을 허락하니 파리를 없애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파리가 없어지자 파라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재앙으로 이집트인의 가축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래도 파라오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여섯째 재앙으로 이집트인과 아직 살아있는 그 땅의 짐승들에게 지독한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파라오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파라오를 찾아가 몹시 화를 내며 하느님께서 무시무시한 우박을 들판에 쏟을 것이니 집으로 들어오지 않은 사람과 짐승을 모두 죽게 될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고센 땅을 제외한 이집트 온 땅에 걸쳐 들판마다 우박이 내리쳐 숱한 사람과 짐승이 죽고 식물들이 꺾이자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자기 죄를 뉘우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일곱째 재앙이 걷히자 파라오는 다시 교만해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여덟째 재앙은 메뚜기 떼의 습격이었습니다.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메뚜기 떼가 앞선 재앙 때 우박의 피해를 면한 식물들을 모조리 갉아 먹어버렸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 앞에서 자기 죄를 뉘우치며 먼저보다 더 간절히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재앙이 걷히자 다시 그의 마음은 교만해져 버렸습니다. 

  아홉째 재앙은 어둠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명을 받아 하늘로 그의 팔을 내미니 온 땅에 사흘 동안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앞의 사람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어둠이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곳에만 빛이 있었습니다. 파라오가 모세를 불러들여 양과 소를 남겨두고 아이들만 데리고 가면 허락하겠다고 하자 모세는 가축을 모두 몰고 가겠다고 응수했습니다. 두 번 다시 나타나면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치는 파라오에게 모세가 마지막 재앙을 선포했습니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저 또한 다시는 당신 얼굴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집트 위에 한 가지 재앙이 더해질 것입니다. 이집트 땅의 모든 처음 난 것은 임금의 첫아이나 종의 첫아이나 짐승의 처음 난 것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종들이 내 앞으로 나아와 무릎을 꿇고 나와 이스라엘 백성더러 제발 이집트를 떠나 달라 애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 후에야 제가 나갈 것입니다.” 말을 모두 마친 모세는 분노가 가시지 않은 채로 파라오에게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비로소 모세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에 열 번째 재앙으로 장자의 죽음이 닥칠 것임을 동족에게 알렸습니다. 또한 이 재앙을 피하려면 재앙이 닥칠 날 저녁이 오기 전에 문틀 양 기둥과 머리 부분에 1년 된 숫양이나 어린 양이나 어린 염소의 피를 뿌려 표시해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마침내 그 저녁이 왔고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말대로 고기를 굽고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으며 이집트에서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히브리인은 지금도 이 날을 유월절(파스카)로 기념합니다. ‘유월’은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한밤중에 이집트 전역에 통곡이 메아리쳤습니다. 파라오조차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인들은 밤중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와 당장 자기들을 떠나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줄을 지어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를 제외하고도 60만 명이나 되는 큰 무리였습니다. 거기에 가축 떼와 세간까지 함께 했으니 그 행렬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장정만 60만이란 숫자는 과장입니다. 탈출기 본문이 쓰인 후기 통일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인구가 약 200만(장정만 약 60만 명)이었으니, 이 부분을 서술한 사람은 자기 시대 인구의 총합을 적어 넣은 것입니다.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식사 때가 되면 무교병(발효제를 넣지 않은 빵)을 불에 구워먹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도 유월절부터 일주일 동안을 무교절(무교병을 먹는 명절)이라 부르며 기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 요셉의 관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 머문 지 430년만의 일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화산활동이 있는 곳 같습니다. 




  성서는 열세 개나 되는 부족이 한꺼번에 이집트를 탈출했다고 서술하지만,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당시 이집트와 관련된 어떤 기록에도 장자가 떼몰살하는 대재앙이나 커다란 규모의 민족 탈출 사건이 없다는 점을 들어 실제로는 아주 적은 무리의 일탈로 시작해 차츰차츰 큰 무리를 이루었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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